그는 내 현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하늘을 지나야 이를 수 있는 곳에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는 달에, 나는 지구에 살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우리는 어긋나 있는 시간을 이어왔다. 지구인인 내 곁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고 달에 사는 그에게 나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사는 존재였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는 내 곁에 있어 주지 못했고 그가 나를 안고 싶어 할 때 나는 그에게 안길 수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전부 이지러져 있었다. 그러하기에 드라이브를 하고 영화를 보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이 우리에게는 결코 평범한 일이 될 수 없었다. 힘들었다. 평범에 이르기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지치기도 했다. 무엇 하나 수월한 것이 없다 싶은 생각에 숨이 차올라 질식할 것 같기도 하였다. 왜 내 사랑은 외로움, 괴로움, 쓸쓸함을 건너서야 이를 수 있는 것인지 몰라 눈물로 지새운 밤도 적지 않았다.
비행기가 사라지면서 그가 쏟은 눈물과 내가 흘린 눈물을 다 모으면 바다를 만들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울고 또 울었다. 우느라 밤이 사라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해 서럽게 울었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속에 뿌리내린 귀한 이 마음을 과연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끝없이 불안해하면서도 그와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갔다. 눈물로 살이 짓물러 버릴 만큼 울어대느라 가슴이 헐어버릴 지경이 되었음에도 다음날이면 내 걱정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어주는 게 고마워서,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주어서 우리는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 마음을 차마 놓지 못했다.
M Chagall_LES AMOUREUX AUX COQUELICOTS
평범하지 않은 것은 특별한 것 또는 별난 것이 된다. 별난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추수하듯 만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인한 인고의 세월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특별하고 특별했기에 그리하여 소중하다는 말만으로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없었기에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그 특별한 길에 겁 없이 들어서고 말았다. 후회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말이다. 평범해야 할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우리에게 사랑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즈음하여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이 영원히 존속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들었다. 사랑에 있어서는 마음이 전부니 그 마음만 잘 지켜낸다면 영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나도 무모하고 바보 같다는 점에서는 똑 닮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가 수긍하였기에 나는 사랑의 영원을 확신했다.
세사를 벗어나 살지 않는 이상 사랑은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실에는 사랑을 남루하고 치졸하게 만듦으로써 사랑의 마음을 끝없이 시험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었다. 현실이 만들어 놓은 덫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와 나는 뜨거운 마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겁 없이 뛰어들었다. 꼭 잡은 두 손이 헐고 나로 인해 상대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절망을 마주해야 하기도 하는 잔혹한 환상의 세계가 깃든 그곳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