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바꾸기 놀이

by Lunar G

상상은 소진되지 않으니까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기로 했어. 이렇게 한 걸음 떨어져 생존만 확인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서글프고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게 말이야. 실제 같이 있는 것보다 함께 있다는 감각과 그 느낌이 때로는 더 중요할 수 있다더니 당신이 이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어. 이 서프라이즈가 사랑을 이토록 깊게 해 주리라는 것도 몰랐고.

애틋함에 절실함이 더해지면 간절함이 돼. 그러면 괴로움에 신음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나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을 당신을 먼저 보게 되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도 하게 되지. 당신의 동굴에 빛이 들기를 하고 말이야. 나의 사랑은 이렇듯 오늘도 그리움 속에서 진화하고 있어.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는 그때대로 좋아하는 마음이 최정점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사라진 후 이 사랑은 성장이 아닌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때문인지 지금의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애틋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에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어. 당신이 없으니 늘 혼자 추는 춤이 되어 버리고 말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모든 걸 걸고 누군가를 위하게 되는 이 마음이 언제 어떻게 다시 나에게 닿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혼심을 다해 그 마음에 집중해야 해. 그래야 이 사랑을 곱고 귀하게 지켜낼 수 있어.

상상 속에서 역할 바꾸기 놀이를 생각하고는 해. 요즘은 당신이 글을 쓰고 내가 당신이 하는 그 작업을 해서 우리가 만든 것을 조합해 보는 장면을 자주 봐. 그러면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져.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 당신의 작업을 배워둬 놓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돼. 글 쓰는 일은 자기 도야와도 같아서 쓰고 고치고 좌절하고 다시 쓰는 과정의 연속이라 인내를 익혀가는 것뿐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아마 많지 않았을 거야. 자기 도야라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니 그 부분에 있어서 내 역할은 더 없었겠지.

당신이 하던 작업은 내가 하는 일보다는 훨씬 전문적이었으니 미리 배워두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해. 그랬다면 당신이 부재하는 사이에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을 위한 작품을 남겨둘 수 있었을 텐데. 그 과정에서 당신은 이런 발상을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담아냈겠구나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었겠지. 새 작업을 할 때 당신이 느꼈던 압박감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겠지. 아쉽다, 미리 배워두지 못한 게. 혼자서 분투해 보고 있지만 잘 되지 않아.

언젠가 돌아오면 어떻게 그 작업을 하는지 알려 주면 좋겠어. 그 분야에서만큼은 서툰 나겠지만 당신을 더 잘 알기 위해 당신의 작업을 배워두고 싶어. 그렇게라도 당신을 나에게 더 깊이 새겨두고 싶으니까 말이야.


R Magritte_La Masison de Verre_1939.jpg R Magritte_La Masison de Verre_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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