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할 때는 마음을 더 믿어봐

by Lunar G

책을 읽다가 문자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숨이 차. 눈도 아프고 심장도 두근거려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게 돼. 그러면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이 아른거려. 당신이 웃고 그러면 나도 슬며시 미소 짓고. 그런 당신을 보며 당신 어깨에 기대고 있기라도 한 듯 천천히 숨을 쉬고 있자면 지난날들이 떠오르곤 해.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어. 그냥 그 공부가 마냥 좋았어. 그래서 전망 같은 것 생각하지 않고 뒤늦게라도 진로를 바꾸려고 했었어. 걸어온 길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니까 당신 옆에 가서 공부를 더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 나는 공부를 하고 당신은 일을 하고. 바쁜 일상을 공유하며 더불어 꾸려가는 삶을 떠올려 보며 두근거려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아득히 멀게 느껴져.

그때 비행기를 탔더라면 지금의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그러면 그랬더라면 그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은 없지 않았을까, 당신이 쓰러진 것조차 모르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느닷없이 헤어져 있게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으니까 자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이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났어. 힘든 상황인 것을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도 자꾸 어긋나니 나도 모르게 하늘을 원만하게 되더라. 하늘은 답이 없고 상황은 끝없이 우리를 시험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나의 답은 늘 정해져 있었어. 당신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 안겼고 모든 것을 걸고 그 사랑은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나에게는 이 사랑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어.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변치 않는 한 말이야.

당신도 그러했겠지만 사실 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날들이 적지 않았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편하게 함께 할 날이 올 테니까 죽을힘을 다해 견디자며 그날을 기다렸어. 내 상황이 괜찮아지면 네가 바빠지고 너에게 일이 생기면 나는 숨을 돌릴 수 있게 되고. 기다림이 부족했던지 마음이 부족했던지 우리의 만남은 어쩐지 계속 어긋났어. 그게 너무 서운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이렇게 서운하게 만드는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어. 함께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일 테니 힘들고 괴롭다고 해서 당신을 원망할 수는 없었거든.

사랑이 괴로움을 소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면 나는 내 가슴을 끌어안은 채 소리 없이 울었지. 당신도 뒤돌아서서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당신에게 기댈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일어나면 당신 말처럼 웃을 수 있게 되었어. 그러면 다시 웃는 얼굴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당신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말을 걸었지. 당신은 그런 내가 안쓰러운 듯 눈물을 삼키며 웃었어. 눈물 어린 당신의 눈이 어른거리는데 왜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건지.

Two Lovers Beneath an Umbrella in the Snow_Harunobu_1767.jpg Two Lovers Beneath an Umbrella in the Snow_Harunobu_1767

교토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철학자의 거리에 다녀온 적이 있어. 어제 그때와 비슷한 거리를 걷는데 문득 당신과 내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 신선한 공기에 둘러싸여 슈트가 아닌 청바지를 입은 당신과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긋나 있는 우리의 시간이 닿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 예전과 다름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당신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데 눈물이 떨어지더라. 자상하게 내 어깨를 감싸주는 당신의 떨리는 손길에서 당신의 걱정이 느껴지더라.

힘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아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나는 그 결정을 존중하고 믿을 테니까.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나 때문에 당신이 괴로워하는 것 그래서 당신이 나 몰래 우는 것이니까 언제든 견디지 못하겠으면 돌아와. 물론 상황이 진정되기 전까지 그러지 않을 당신이란 거 알고 있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 곁을 지키고 있을 거란 거.

우리네 사랑은 늘 당신과 나의 눈물이 바닥날 지경이 되면 찰나 같은 행복의 순간을 안겨주었어. 만남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헤어져 있는 밤은 길게 이어졌지. 그렇다고 해도 나 당신과 나의 연이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지금의 나는 그거면 돼. 얼마를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사하다는 것이고 매일 나에게 성실히 생존을 알려오고 있다는 거니까. 언제 함께 할 수 있는지는 그다음 문제야. 있잖아, 초조함과 불안을 믿음으로 바꾸어 놓으면 믿음은 그만큼 더 견고해져. 그러니까 초조할 때는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을 믿어봐. 마음이 답을 줄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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