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고 야속하고 둔한 사람

by Lunar G

열흘, 종적을 감춰버린 듯한 당신과 함께 나도 이 세상으로부터 지워졌다. 쓰러졌었다는 당신의 문자가 화살이 되어 심장에 꽂혔다. 문자를 읽는데 그날 밤 꿈에서 느낀 공포가 되살아났다. 눈물이 날숨이 되어 쏟아졌다. 숨을 쉬고 있는데 폐로 공기가 드나들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당신이 보고 싶었다. 당신이 괜찮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을 보여달라고 당신에게 애걸했다.

내가 타들어 가며 당신을 걱정하고 있을 것을 알고 있을 당신 이건만 당신은 어쩐지 당신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걱정으로 타 죽을 것 같다며 당신에게 매달렸다. 지금은 아니라는 대답이 건너왔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라는 말인지 왜 지금은 아닌지 얼굴을 보여주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큰일이 있을 때면 혼자 짊어져 버리는 당신의 나쁜 습관이 또 나왔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둘러싸고 나쁜 소문이 돌고 그리하여 당신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도 당신의 일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심지어 당신이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도 당신은 내게 의논하지 않았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했는데도 당신은 늘 모든 것이 해결된 후 내 앞에 나타났다.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내가 애태우는 것을 지켜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려는 그런 당신이 야속했다. 날 위해 모든 걸 혼자 다 짊어지고 있으면서 당신은 그 모든 게 당신이 나약해서라고, 당신이 나약한 당신 자신을 넘어서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게 서운했다. 나를 위하는 당신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소용돌이치는 운명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었다. 말을 해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구체적으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화를 내지 못하는 내가 당신에게 화를 냈다. 이건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나쁜 소문이 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혼자 다 감당하려는 그런 태도가 때로 나를 질식하게 한다며 당신을 나무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흔들리고 있다면 그렇게라도 당신을 붙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가 있음을 나만은 당신 곁을 지키고 있음을 각인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신은 소리도 표정도 없이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의 웃음을 붙들고 소리 내 울었다.

과로로 인한 일시적 현상. 당신은 당신의 의식을 잃게 한 원인 모를 그 병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듯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당신의 말은 얼굴도 목소리도 들려주지 못할 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의미가 되어 나에게 닿았다. 야속한 당신이 끝끝내 내게 당신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다 말이 되어 내 가슴에 맺혔다. 그리하여 나는 내내 불안과 초조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을 당신임을 알기에 애써 침착한 척했다. 일시적인 그 현상에서 당신이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긴 시간이 흘러서야 당신이 목소리를 잃고 살이 빠져 당신을 내게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건 빨리 회복해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앞에 나타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키는 것 밖에 모르는 야속한 사람, 때로는 보살핌 받는 게 사랑에 빠진 이로서의 달콤한 권리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무심한 사람, 힘들 때는 함께 나누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을 너무도 더디게 알아가고 있는 둔한 사람. 나는 그런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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