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nar G Oct 02. 2023

당연한 것은 없어


문자로 뭔가를 전하는 것은 때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줘. 마음을 문자로 만들어낸다 해도 100%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담아낼 수는 없어. 그래서 종종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해. 이렇게 당신에게 매일 같이 이야기를 전해 온 시간이 나에게는 엄청 소중하게 남아 있어. 그래서인지 이 끝이 내가 그린 그림에 닿아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해.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당신만 무사하다면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는 마음도 두고 있어. 당신이 부담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그게 좋아하는 마음만을 보고자 하는 내 사랑의 방식이겠지. 당신이 좋으니 지금으로서는 그 마음을 나름의 최선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지. 

여름까지는 당신이 나를 뒷바라지했는데 가을부터는 내가 당신 뒤에 서 있네. 덕분에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성실히 전하며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내가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 현실적 제약, 객관적 지표, 물리적 거리 같은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깊은 사랑을 마주하고 있어. 남들 이야기로 들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사연이 되니 충분히 가능한 게 되는 게 너무 신기해. 내가 그리고 나의 주변이 온통 당신으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그런 세상이 펼쳐지고 있나 봐. 

훗날 세월이 지나면 이때를 진심으로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에 마주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제약과 한계가 명확했고 그래서 희망을 보려면 절망의 가시를 끌어안아야 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쉬지 않고 걷고 또 걷고 있으니까. 그래야 당신도 걸을 것이고 당신이 걸어야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생각 속에서 말이야. 버겁지만 이렇게나마 함께 할 수 있음이 나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야.

바람이 더 차가워지면 섬에 가서 도로를 달리며 나를 정신없이 홀려버린 이 시간을 다시 마주하려고 해. 당신을 사랑했던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은 뜨거워지는 데 그만큼 머리를 차갑게 해야 했던 아이러니한 그 시간의 균형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어. 육지를 벗어나 바닷가를 끼고 달리다 보다 보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 그러면 명치에 걸려 있는 설움도 서글픔도 아닌 뭔가가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해. 

당신과 함께 가고 싶은데 아직은 무리겠지. 목소리는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동굴 같은 울림이 있던 당신 목소리 듣고 싶은데 아직은 아직이겠지? 당신 목소리 멋있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들을 수 없어서인지 어쩐지 더 그리워져. 당신에게 소리를 잃은 세상이 찾아올 줄 몰랐을 그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가슴 미어지게 그리워, 당신 목소리가. 그러고 보면 무엇하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면 습관처럼 길들어 있던 이 사랑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당신의 안부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 추위에 약한 당신을 이렇게 혼자 둬서 미안하고 겨울이 날 외롭게 하지 않게 같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워.


Edward Robert Hughes - Whispers On The Wind_1911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