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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Oct 04. 2023

가장 값진 선택

사랑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넘어다보기 시작했다. 남들은 어떻게 사랑하는지 내 사랑만 이렇게 힘든 건지 사랑이 원래 다 그런 건지 같은 게 궁금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도 사랑을 끝낸 사람도 하나같이 다 사랑에 있어서는 시인이고 학자가 되어 있었다. 사랑은 사람을 예술로 빚어내고 있었다. 그만큼 깊이 한 사람을 탐구했기 때문일 것이었고 그만큼 깊이 자신의 감정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사랑해서 행복하고 사랑해서 슬프고 사랑해서 괴로운 과정을 모두가 반복했다. 죽을 것같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한 사람을 그리워했고 견딜 수 없이 힘들어하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사랑을 붙들고 있었다. 사랑하기에, 사랑했기에, 그리고 사랑하고 싶기에 손에 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시제는 달랐으나 그 가운데 사랑이 있음은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프다고 해도 슬프다며 울어도 괴롭다고 소리쳐도 한 사람을 가슴 깊이 품은 이들이 그려내는 마음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랑을 했음을, 사랑을 하고 있음을, 사랑을 시작하고 싶음을 알려오는 문자들이 눈앞에서 하얀 눈이 되어 흩날렸다. 새하얀 눈 속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은 사랑의 문자가 깃들어 있었다. 그 눈이 사랑에 빠진 내 가슴에 닿아 비가 되어 흘러내렸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가운데서 흩날리는 꽃잎을 보았다. 떨어지는 것이 꽃잎인지 비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내 사랑을 천천히 읊어보기 시작했다. 

그가 내게 남겨준 마음은 때로 시가 되어 남았고 때로는 그림으로 새겨졌으며 더러는 소설이 되어 태어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채워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추억을 반추했다. 한동안 너무 아파 꺼내 보지 못했던 기록을 이제는 웃으며 넘겨 본다. 웃으며 울고 울며 웃는다. 모든 게 다 사라진 것 같아서 두 손을 꼭 쥐면 한순간 또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그와의 지난날을 이제는 차분히 넘어다볼 수 있다. 지난날 그와 함께 다져온 시간을 마주하며 아리고 뜨겁게 사랑했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해 나갈 것임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가 말없이 묵묵히 그 자신을 내 심장에 새겨 넣고 있었음을 본다. 내 가슴의 통증이 너무 쓰라려 그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는 사랑을 조각하고 있던 그의 손이 헐어 있음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손에 닿는다. 이 눈물이 그를 더 아프게 할 것을 아는데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사랑이 너무 아파 사랑한다고 소리 내 말하지 못하게 되면서 눈물로 사랑을 외쳐와 버릇했기 때문이다. 나의 눈물로 인해 상처에서 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는 고맙고 미안하다며 아픈 내색 없이 조용히 내 머리를 쓸어내린다. 그러면 나는 또 소리 내 꺼이꺼이 울고 만다. 내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나를 향한 그의 사랑에 안겨 있자니 그를 사랑하여 그를 아프게 했음이 너무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에게 안기어 울면서 나의 마음이 그의 심장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본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浮游)하기만 했던 내 마음이 그의 가슴에 안착하여 조심스레 뿌리를 뻗고 그 모든 과정을 그가 온 마음을 다해 받아내고 있었음을 본다. 뿌리가 뻗어나갈 때마다 가슴이 아팠을 텐데 그 고통을 내색 없이 끌어안아 내버린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본다. 그의 모든 순간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사랑이 그의 심장에 내 사랑의 씨가 깊고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어 이제 나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시련과 고통에 찢기고 녹아내리며 이 사랑을 고이 간직해 왔기에 그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참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테니까 더는 혼자 울지 않아도 된다. 홀로 울었던 밤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웃음으로 채워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쓰리고 아린 행복만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행복도 있음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지기를 잘했다고 이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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