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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Oct 05. 2023

고행 그리고 수행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고행이기도 하다나의 괴로움보다 상대의 아픔을 먼저 보게 되기 때문이고 내 가슴이 너덜너덜해 버렸는데도 상대가 더 아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밤을 지새우게 되기 때문이다사랑함에 있어 시비(是非)는 없다내 마음이 얼마나 아린지와는 상관없이 이 사랑에 대한 완전무결한 믿음이 상대를 향한 걱정을 앞세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어떤 일로 인해 내 속이 허는 일이 있어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해가 아닌 이해를 하려 애쓰게 된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속은 얼마나 아렸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그를 떠올리며 울게 된다그런 내가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져도 머리를 앞질러 간 마음은 내가 아닌 그를 먼저 보게 하기 때문이다

자극이 들어오면 곧바로 움직이게 되는 이 구조에는 이성이 개입될 수 없다그래서 같이 넘어지고도 내 상처는 보지 않은 채 넘어진 그 사람을 먼저 일으켜 세우게 된다. 나의 아픔은 그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뒤늦게 느껴진다. 나도 아픈데 내 앞의 그 사람이 무사하니 웃게 된다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은 울고 나는 웃는다상대의 무사함에 더 안도하고 상대의 아픔에 더 괴로워하게 되는 이 마음에 고행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까. 길이 험해 죽을 듯 괴로운데도 이 마음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할 줄만 알았다사랑을 하면행복을 더 깊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인지 내 사랑은 시련의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의 행복에 닿기 위해서는 열 개의 시련의 봉우리를 넘어와야 했다이번이 마지막인가 하면 예상 못한 일이 또 일어났고 드디어 우리에게도 평범한 날들이 찾아왔나 하면 또 멀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사랑이 가슴을 헐었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나를 괴롭고 고독하게 만드는 게 사랑일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그 마음을 놓지 못했다

사랑을 이유로 그를 붙들고 있는 게 그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를 위해 결단의 용기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수없이 거듭했다나만 힘든 게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쥔 손에서 힘을 빼려는 용기를 내게 해 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내 손에서 힘이 빠지려 할 때면 그가 나를 꼭 붙들어 주었다우리 둘이 다 지쳐버렸을 때는 세월이 우리를 보듬어 주었다그가 그리고 사랑이 버티고 있으니 나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그게 나를 위해 버거운 시간을 묵묵히 받아내 온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이유로 그가 버거운 시간을 마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사랑을 붙들고 있었다그를 둘러싼 여러 상황으로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그가 마음 아파할까 봐 미안해할까 봐 뒤로는 울고 앞에서는 웃었다홀로 울며 알았다그 또한 돌아서서 나와 다르지 않게 울고 있다는 것을그럴 때면 미안하다고 말하게 됐다그러면 그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를 울려서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했다나를 위해 기꺼이 사랑의 아픔을 껴안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당신을 위해 이 시간을 마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말이다

이 고행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언젠가 한숨 쉬며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되는 날 우리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큰 마음이 사랑을 더디지만 깊이 알아갈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고 하게 되지 않을까그때는 우리가 마주해 온 시간이 고행이 아닌 사랑을 위한 성스러운 수행이었음을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오늘도 감사한 오후다. 


                                                     Edward Robert Hughes_Midsummer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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