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선생님의 <청춘>을 들으며
청춘과의 이별에 대해 생각한다.
멀어지는 듯한 청춘이
아쉽고 아팠던 그 해 참 많이도 울었다.
꿈, 사랑, 일, 실패, 성취.
내 청춘을 사로잡았던 모든 걸
이젠 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꽤 우울해졌었다.
청춘 그리고 사랑.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두 단어가
특히 더 가슴을 아리게 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어리고 예쁜 여자를 탐하게 되어있다고 했던가.
세월이 흐르면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해 온 그녀 역시
남자의 본능에 반(反)하는 여자가 될 거란 생각은
사랑을 맥 빠지게 한다.
주름살 하나 없는 피부
잘록한 허리와 미끈한 다리
생기 넘치는 얼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젊은 미녀들의 왕국 대한민국은
나이 들어가는 여자들이 살기엔 참 퍽퍽한 나라다.
남녀 관계가 본능의 일이기만 하다면
긴 세월 이어져온 사랑은 거짓과 허상에 불과할 것이고
결혼은 서서히 죽어가는 서로를 바라보는 비극이 될 것이다.
사랑이 좋은 껍데기를 가진 누군가를 쟁취하는 것이라면
청춘을 넘긴 이들에게, 살을 부대끼고 사는 부부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모든 걸 공유하고
삶을 함께 꾸려가는 결혼 생활에는
본능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있다.
주름이 늘고 젊은 날 아름다움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도 함께 퇴색되는 게 아니다.
세월을 먹은 사랑은 또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에겐 세월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다.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의 나로
너는 나의 너로
매일 다시 태어나는 걸 보며
우리는 또 한 번 설렌다.
영혼의 짝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탄력 없는 살과 주름진 얼굴이라면
너이기에 그리고 나이기에
나이 들어가는 모습까지
기꺼이 내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사랑이다.
나이 든 내 모습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너라면,
내 눈에는 늙어가는 네가
푸른 청춘보다 더 눈부셔 보인다면
그건 분명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