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 잃었을 뿐인데
내가 녹아내린다.
헤어진 것뿐인데
나를 구축하고 있던 모든 게 무너져간다.
이 막막함의 정체는 뭘까.
이 먹먹함의 끝은 어딜까.
모든 게 흐릿하고 불투명하다.
자책.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소중했던 너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내게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병.
불신.
너를 잃은 날부터
나를 의심하고
널 내 평생의 반쪽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내 안목을 질타하며
나를 둘러싼 세상을,
세상을 보는 내 눈을 믿지 못하게 된 병.
미련.
널 사랑한 게 틀리지 않았다며,
널 잘못 본 게 아니었다며
오답을 정답이라 고집하는
대책 없는 정신병,
사랑을 갈구하는 만큼
너를 그리고 나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며
실패한 사랑 조각을 손에 쥐고
피 흘리는 무모한 병.
네가 나를 망쳤다.
너로 인해
숨도 쉴 수 없이 아파서,
이러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너를 악(惡)이라 규정하기로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너를 악으로 만들었다.
악이기에,
더는 널 떠올리지 않을 줄 않았는데
악이 되어 버린 너를 나는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네 존재도
내 존재도
사랑했던 그 시간마저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규정하기 힘든 병증 속에
나는 아직도 널 기다린다.
이별,
내가 죽어가는 걸 보며
너를 끌어안게 하는
자멸 바이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