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 남긴 병

by Lunar G

너 하나 잃었을 뿐인데

내가 녹아내린다.

헤어진 것뿐인데

나를 구축하고 있던 모든 게 무너져간다.


이 막막함의 정체는 뭘까.

이 먹먹함의 끝은 어딜까.


모든 게 흐릿하고 불투명하다.


자책.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소중했던 너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내게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병.


불신.

너를 잃은 날부터
나를 의심하고
널 내 평생의 반쪽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내 안목을 질타하며
나를 둘러싼 세상을,
세상을 보는 내 눈을 믿지 못하게 된 병.

미련.
널 사랑한 게 틀리지 않았다며,

널 잘못 본 게 아니었다며
오답을 정답이라 고집하는
대책 없는 정신병,
사랑을 갈구하는 만큼
너를 그리고 나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며
실패한 사랑 조각을 손에 쥐고
피 흘리는 무모한 병.


Vanité au Crâne by Bernard Buffet.jpg Vanité au Crâne by Bernard Buffet


네가 나를 망쳤다.


너로 인해

숨도 쉴 수 없이 아파서,

이러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너를 악(惡)이라 규정하기로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너를 악으로 만들었다.

악이기에,

더는 널 떠올리지 않을 줄 않았는데

악이 되어 버린 너를 나는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네 존재도
내 존재도
사랑했던 그 시간마저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규정하기 힘든 병증 속에

나는 아직도 널 기다린다.


이별,

내가 죽어가는 걸 보며

너를 끌어안게 하는

자멸 바이러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확인사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