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와 스페인 계단
럭셔리 브랜드의 자선적 책임활동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불가리 컬러(BVLGARI Color) 전시회에 다녀왔다. 평소에 주얼리나 보석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아내 그리고 아들 녀석과 안구정화도 할 겸 가보자 해서 가게 되었다.
193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불가리가 소개한 헤리티지 컬렉션 및 개인 소장품 200점이 전시되어 있었던 그 공간은 말 그대로 화려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평소에 보석이나 주얼리에 관심이 없던 필자의 눈을 한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함께 간 아들 녀석도 전시회 이곳저곳 쏘다니며 보석 구경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전시회 곳곳을 둘러보던 중 필자는 멀티컬러룸에서 불가리를 상징하는 콘도티 매장이 위치한 스페인 계단을 디지털 아트로 재현한 작품 앞에 눈길이 사로 잡혔다. 영화 로마의 휴일 배경으로도 유명한 스페인 계단은 불가리가 2016년 1,500만 유로의 기부를 받아 복원 작업을 마친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리는 2016년 카라칼라 스파 바닥 복원 프로젝트를 마쳤으며, 올해(2021년)를 목표로 라르고 아르헨티나 성역 복원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불가리는 오랫동안 로마의 기념비적인 유적 및 건출 기념물을 복원하기 위한 문화 후원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불가리가 후원한 스페인계단 복원(bulgari.com)불가리가 로마의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불가리가 지향하는 아이덴티티와 일치하는 사회적 책임활동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는 재력, 명예, 사회적 권력, 그리고 야망 등을 지향하는 반면에 사회적 책임활동은 공정, 복지, 공익과 정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와 사회적 책임활동은 서로 상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럭셔리 브랜드는 어떤 사회적 책임활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의 따가운 눈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Carroll은 책임활동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경제적 책임(Economic Responsibility), 법적 책임(Legal Responsibility), 윤리적 책임(Ethical Responsibility), 그리고 자선적 책임(Philanthropic Responsibility)이 그것이다. 그 중 자선적 책임은 기업이 인류 복지(human welfare)와 선의(goodwill)를 실현하는 활동이다. 가령 문화예술, 교육,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 지원 등이 자선적 책임 활동의 예로 볼 수 있다. 불가리가 진행한 로마 유적지 복원 사업은 자선적 책임활동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불가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책임활동이 있겠지만 자선적 책임이 럭셔리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보다 유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는 시장 내에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인한 거래장벽이 존재하지만 해당 제품을 소유하고 싶은 열망은 지속되기 때문에 성취지향적이며(promotion focusing) 이상적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Park et al. 1986; Yeo and Park 2006). 따라서 성취지향적인 럭셔리 브랜드 관점에서 봤을 때 보다 이상적인 사회공동체를 성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선적 책임활동을 채택한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선적 책임활동은 경제적(혹은 법적) 책임과 비교했을 때 자발적인 공헌활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적 존경(social esteem)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는 경제적�법적 책임활동보다는 자선적 책임을 하게 될 경우 보다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선적 책임활동은 다른 책임활동과 비교했을 때, 단기간에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며, 그 만큼 티도 안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선적 책임은 어쩌면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활동이기도 하다.
전주언(2016), 럭셔리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연구: CSR 활동 유형과 메시지 구성을 중심으로, 마케팅관리연구, 21(4), 45-66.
Carroll. Archie B. (1991), “The Pyramid of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Toward the Moral Management of Organizational Stakeholders,” Business Horizons, 34(4), 39-48.
Kapferer, Jean-Noel (1998), “Why Are We Seduced by Luxury Brand?” Journal of Brand Management, 6(1), 44-49.
Park, C. Whan, Bernard J. Jaworski, and Deborah J. MacInnis (1986), “Strategic Brand Concept-Image Management,” Journal of Marketing, 50(4), 135-145.
Yeo, Junsang and Jongwon Park (2006), “Effects of Parent-Extension Similarity and Self Regulatory Focus on Evaluations of Brand Extensions,”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16(3), 272-2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