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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Feb 06. 2020

자다가도 푸얼차가 생기는 곳

차(茶)알못의 푸얼차 입문기

커피를 좋아하던 내가 차(茶)에 입문하게 된 건 순전히 김태희 때문이었다. 베이징 체류 시절 어학당에서 만난 태희는 한국에서 금융회사 임원 비서로 일하다 온 20대였다. 입학 초기 출석을 부를 때면 유명 배우와 똑같은 이름으로 한 번, 그 배우 못지않은 미모로 또 한 번 학우들을 놀라게 했다. 특별한 이름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나는 그녀를 중국식 발음대로 ‘뚜이시’라고 불렀다. 차분하고 성실한 뚜이시와는 말도 잘 통해서, 반년 후 대학가인 우다커우(五道口) 지역으로 학교를 옮겼을 때 지질대학교 교수아파트를 빌려 하우스 메이트로 지내기도 했다.


그녀는 중국어 공부뿐 아니라 중국이 종주국인 탁구, 우리나라 해금과 비슷한 중국 악기 얼후, 중국식 다도를 일컫는 차예(茶艺) 등 ‘중국적인 것’을 배우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가끔 그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이것저것 구경할 수 있었다. 뚜이시를 따라 교내 탁구장에 놀러 갔다가 연습 나온 동네 아저씨에게 기초 자세와 연습법을 공짜로 과외받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중국 탁구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한인촌 왕징의 한국인 차관에 나를 데려간 사람도, 베이징에서 가장 큰 차 도매시장 마롄다오 차청(马连道茶城)을 처음 구경시켜준 사람도 뚜이시였다. 내가 귀국한 후에도 뚜이시는 중국에 남아 지난 10년간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지금은 고급 다예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쑤저우(苏州)에서 한시앙(含香)이라는 다실을 운영하며 강의도 하고 있다.

둥근 떡 모양의 푸얼차 병차는 송곳 같은 차칼로 소량을 뜯어내 자사호에 우려서 마십니다. (출처: 한시앙)


이런 뚜이시 덕분에 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처럼 전문적 수준은 언감생심, 그저 몸으로 부딪쳐 본 다음에 정보를 찾아보는 식으로 기초상식을 깨우쳤다. 차는 종류에 따라 열을 올려주는 것과 내려주는 것이 있어서 계절에 맞춰 골라 마셔야 좋다, 중식당에서 흔히 나오는 재스민차는 가장 저렴한 차에 속한다, 이런 상식도 당시에 처음 알게 되었다. 영국 홍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중국 홍차가 내 입에 더 잘 맞는다는 것도 그 때 깨닫게 되었다.


어느 분야든 초심자가 장비에 눈을 뜨면 패가망신행 급행열차를 타는 법. 백자에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징더전(景德镇, 경덕진) 개완(盖碗) 세트와 발효차를 우릴 때 주로 사용하는 자줏빛 도자기 자사호(紫砂壶)에 마음을 빼앗겨 많이도 구경을 하고 다녔다. 그저 아름다워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 4대 도자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름신을 내쫓느라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명품 도자기는 가격도 명품이라 ‘장비빨’을 세우려야 세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호는 2000년대 초중반 푸얼차(普洱茶, 보이차) 열풍과 함께 인기가 올라가서 가격 또한 크게 뛰었다고 한다.


2011년 자사호의 본고장 이싱(宜兴, 의흥)에 직접 가본 적이 있다. 명성을 듣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허허벌판에 자사호 공방 수백 개가 모여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구경삼아 들어간 곳이 마침 국가급 고급공예미술사 선생님의 가게였다. 교류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반가워하기에 편하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주먹만 한 자사호 한 개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라고 했다. 더 상석에 놓인 제품의 가격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놀란 표정을 숨기며 자연스럽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건물 옆에 시골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페라리가 주차되어 있어 더욱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싱 자사호 (출처: 한시앙)

이렇게 호기심 천국인 내게도 푸얼차는 지금껏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차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지만,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몸에 좋고 비싸기로 소문난 푸얼차는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비싸게 소비되는 소수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카더라 통신으로 지식을 쌓은 푸얼차 전문가들이 어찌나 많은지 한 마디 거들 상식이 없는 사람은 어쩐지 민망해진다. 티백으로 출시되는 녹차나 홍차와 달리 푸얼차는 고르는 법도 섭취하는 방법도 상당히 번거롭다. 특히 발효차 특유의 곰삭은 냄새는 비위가 약한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푸얼차와 좀처럼 친해지기 어렵다는 사람도 많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목욕탕에는 냉탕과 온탕 외에도 입욕제를 넣는 이벤트탕 두 개가 따로 있었다. 녹차탕은 향이 좋았다. 다만 색소가 잔뜩 들어간 것처럼 강렬한 에너지음료 색이어서, 탕에 들어갔다가 몸에 형광색 물이 들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옅은 갈색의 루이보스탕이었다. 젖은 톱밥이 쉰 것 같은 특이한 냄새가 났다. 성인이 되어서야 루이보스도 마시는 차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향만 맡으면 어쩐지 목욕탕 물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비위가 상했다. 같은 발효차 종류인 푸얼차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렇다보니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대장암 투병 중이던 둘째 이모에게 구해드렸던 병차, 오랜만에 만난 방송 작가 후배가 다이어트에 좋다며 두 시간 내내 물에 타 먹던 가루차 정도가 내가 가진 푸얼차에 대한 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원산지인 윈난에선 푸얼차를 접하기가 너무 쉬웠다. 자다가도 떡, 아니 푸얼차가 생길 정도였다.


푸얼 쓰마오에서 홍허 젠수이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던 나는 경찰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지역 간 이동을 철저히 관리하는 중국에선 경계를 넘어갈 때마다 탑승객 신분증을 검사한다. 우리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신분증을 제시하면 이동용 단말기로 스캔한 후 돌려주는데, 외국인은 중국 신분증이 없으니 전산 확인이 어렵다. 간단히 여권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방명록 같은 곳에 개인정보를 수기하는 경우도 있어서 번거로운 상황이 생기곤 한다. 그날도 경찰의 요청에 따라 여권을 내밀었다가 호통을 들었다. 

“이것 말고 신분증을 내놓으세요!”

“이게 제 신분증이예요! 저는 외국인이라고요!”

눈이 휘둥그레진 경찰은 그제야 여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일로 내가 외국인이란 것을 알게 된 옆 사람이 신기해하며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푸얼 출신으로 젠수이에서 일하고, 아내와 딸 둘은 근처 도시 스핑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프신 어머니를 살피러 고향에 다녀가는 길이라고 했다. 한국인도 차를 마시냐고 묻더니, 푸얼차 숙차와 생차 병을 하나씩 꺼내 내게 내밀었다. 한국에선 못해도 몇 만원씩은 할 텐데, 초면에 선물로 받기에는 부담스러워 사양을 했다. 그는 친구네 차창에서 만든 것을 공짜로 받았다면서, 여유분이 남아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부러 쇼핑백 안까지 보여주었다. 생산 년도까지 살펴보고 오래된 제품을 골라주는 정성이 고마워서,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고 차를 건네받았다.


어라? 푸얼 사람이 나눠준 푸얼차 브랜드가 멍하이맛이네?


현지인은 푸얼차를 연하게 우려 물처럼 마시기도 한다. 어딜 가도 푸얼차가 나오니 안 마실 도리가 없다. 신선해서인지 연하게 우려서인지, 현지에서 맛본 푸얼차는 군내가 덜해서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은근히 중독돼 일부러 찾아서 마시게 되었다. 그 비싼 걸 어떻게 일상적으로 마시냐고? 한국과 달리 현지에는 저렴한 푸얼차도 많았다. 


유명 브랜드, 비싼 골동품 차는 선물용이지 일상용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건 오히려 짝퉁도 많단다. 푸얼차나 중국차를 구입하고 마실 때 어떤 차가 좋은지,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안전한 차를 구매할 수 있는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2012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티월드 페스티벌’에서 만난 중국 보이차 장인 추병량 보이차 종신대사는 이렇게 조언했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게 바로 좋은 차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고 경제 능력 안에서 흔쾌히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면 된다는 얘기다.

윈난에서 차를 직접 판매하는 업계 전문가도 강조했다.

“굳이 비싼 브랜드가 아니어도, 품질을 믿을 수 있고 자기 입에 맞기만 하면 좋은 차예요.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어서 금값보다 비싼 건 정상이 아니죠. 평범한 사람이 마실 수 없다면 사치품일 뿐 그게 어떻게 차라고 할 수 있겠어요?”


리장고성 도처에 있는 푸얼차 상점을 보면 윈난이 푸얼차 생산지라는 게 실감났지만 처음에는 현지에 가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중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기 때문이다.

“차나무, 차밭은 대체로 산속에 있어서 현지인 안내 없이는 구경하러 가기가 어려워.”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지인 찬스’가 생길 줄. 쑤저우의 뚜이시가 알고 지내던 거래처 사장님이 푸얼차 최대 산지 멍하이(勐海, 맹해)에 있었다. 본래는 시솽반나에 가기 전 뎅기열이 수그러들었는지 물어보기 위해 소개를 받았는데, 12월 들어 상황이 수습되었다면서 놀러 오면 차산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인사치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냉큼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어디서 그런 낯 두꺼운 용기가 났던 것일까.


낯선 사람에게 푸얼차를 받은 일도, 놀러오라는 말에 덜컥 가겠다고 한 일도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민폐 끼치는 걸 꺼려하는 내 성격은 정치 분야에 일하면서 늘 고민이었다. 신세를 지고 신세를 갚는 것이 정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야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정치이니, 맞는 말 같기는 하다. 그런데 신세를 지는 게 더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에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다시 읽고 무릎을 탁 쳤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는 데 반해, 도움을 준 사람은 처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상대에게 준 도움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고 남다른 수고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기여를 했다는 그 심리가 지지자, 정치적 동료로 묶어놓을 수 있는 핑계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탁을 하지도 않고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는 깔끔한 관계란, 업무 협력이 끝난 후엔 사실상 특별히 지속될 필요가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을 의미하니까. 인간적 유대나 우호적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먼저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면 되는 일이다. 내가 주는 건 괜찮지만, 남이 주는 건 언제고 돌아올 청구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독립적인 성격 탓이고, 둘째는 신세를 진 후 상태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경우 미안해지기 때문이었다. 핵심은 세 번째다. 내가 신세를 진 상대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때 부담을 느껴 무리를 하게 된다면, 정치 분야에서는 그 결과가 부패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게 철컹철컹 철창 신세를 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지속될 관계 속에서 느껴야 했던 부담을 한국에 내려놓고 떠난 여행. 길에서 만난 것은 그저 외국인 여행자가 자신의 조국과 고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기를 바라는 중국인의 순수한 선의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며 평소답지 않은 욕심을 부려 보았다. 그렇게 우발적으로, 보이자의 본고장 멍하이행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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