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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Jul 29. 2018

아끼던 책 처분하며 나 자신을 바라본다

사랑해서 모았던 한 권 한 권 갑작스러운 이사로 떠나보낼 때

책을 읽으면서, 문장 사이로, 아내의 목소리가 꾸준히 들려왔다. “책, 언제 치울 거야.” 물론 아내는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읽기 중독자와 스물다섯 해 가까이 살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 널린 책들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안방을 서재로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책 때문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불가능한, 사방 벽에 거실 벽까지…… 결국 바닥까지 책으로 덮인 어수선한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나한테도 할 말은 많다. 여러 번 시도를 했다. 버리기도 하고, 내다 팔기도 하고, 도서관에 기증도 했다. 하지만 책과 이별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게 어렵다. 영혼이 조각나는 기분이 든다.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서재를 떠나보내며』에서 망겔이 말하듯, “책은 일종의 다층적 자서전이고, 모든 책은 (중략)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버릴 책들을 고르려고, 책장 앞에 앉아 보라. 침묵하던 책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손목을 잡고, 어깨를 감싸고, 귓속으로 숨결을 불어넣는다. 책을 구입할 때 있었던 일들, 책과 관련해 있었던 사건들, 밑줄 긋고 여백에 적은 온갖 문장들……, 뮤즈의 여신처럼 책은 인생을 관통하면서 육체를 감전시키고 영혼을 흥기시킨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폭발하고, 기억이 무한정 솟아오른다. 하나의 몽상하는 기계처럼, 꿈꾸는 식물처럼, 붙박인 채로, 홍차와 마들렌 냄새를 맡은 프루스트가 되어, 한없는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 하루, 세 권밖에 버릴 책을 못 고른 적도 있다.


알베르토 망겔의 이름은 그 자체로 독서가의 별칭으로 여겨진다. 그는 눈먼 보르헤스한테 책을 읽어 주는 소년으로 등장해 우리 호기심을 끌었고, 『독서의 역사』를 써서 우리 행동에 시간의 깊이를 불어넣었으며, 지금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일하면서 “발현된 모든 종류의 정의”를 소장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곳으로 ‘도서관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알베르토 망겔, 『서재를 떠나보내며』, 이종인 옮김(더난출판사, 2018)

하지만 작게는 책을 버리려고 보따리를 싸는 일에서 크게는 서재 자체를 떠나보내는 일까지 책을 사랑하는 자의 운명엔 반드시 책과 이별하는 순간이 포함되어 있는 법이다. 망겔도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 망겔은 프랑스 농촌 마을의 오래되고 널따란 석조 헛간에 서재를 마련하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파리, 런던, 밀라노, 타히티, 토론토, 캘거리 등을 떠돌면서 모은 책들을 안식시킨다. 


서재를 마련한 이들은 흔히 꿈꾼다. 몽테뉴가 책들로 가득한 치타델레에서 오직 영혼만 돌보았듯, 이제 서재가 생겼으니 “나의 진정하고 온전한 이야기가 서가 어딘가 있어서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과 행운뿐”이라고.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망겔의 서재를 파괴한다. 프랑스 정부와 다툼이 생기면서 망겔은 널따란 서재를 버리고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밖에 없어진다.


일찍이 벤야민이 아내와 헤어지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상자에 담긴 책 2000권을 하나씩 꺼내 들면서 「나의 서재 공개 ― 수집에 관한 한 강연」라는 아름다운 회상을 남긴 것처럼, 망겔은 『서재를 떠나보내며』에서 70여 개 상자에 3만 5000권에 이르는 책들을 포장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책들을 책을 상자의 어둠 속으로 “생매장”하는 고통을, 사라진 낙원에 대한 “분노와 애도”를, 죽을 것만 같은 “상실감”과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차례로 기록한다.


서재를 만들려고 책 상자를 열어 책을 손에 드는 순간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순간순간 책은 기억의 촉매가 된다. “책은 갑자기 손 안에서 하나의 징표, 기념품, 유품, DNA 한 가닥이 된다. 우리 온몸은 이런 것들로 재구성될 수 있다.” 책들을 서가에 배열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창조인가. 우리는 모두, 즐거운 천재가 된다. “무질서하게 부활한 책”들에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하는 동시에, ‘아니야, 이게 더 낫겠어’ 하는 우연한 영감과 “변덕스러운 악덕”에 따라 책들을 서가에 배치하는 일을, 지치지도 않고 수행한다.


반대로 서가에서 책을 내려 상자에 넣는 일은 얼마나 우울한 여정인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머뭇거리는가. 친인의 잔소리와 무자비한 도움 없이 이 일을 끝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망겔은 책 싸기를 “오래도록 지속되는 작별 인사”라고 부른다. 책의 순례자답게, 이 책에서 망겔은 서재를 떠나보내는 슬픔의 행로를 독서와 겹쳐 쓴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불행을 겪은 그레고르 잠자, 불의에 대한 복수를 상상하는 리어 왕, 서재를 잃었지만 돈키호테로 변신해 정의를 전파하러 나선 키하노 등이 그의 비통함과 동반한다. 


상자 속에 갇힌 책들, 오랫동안 그와 함께했던 책들의 내용을 차례로 떠올리면서 망겔은 용기를 회복하고 서서히 상실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꿈을 이루어 줄 완벽한 장소를 건설하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바벨탑일 뿐이다. 하지만 탑이 무너졌다고 인간의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바벨탑 이후에야 인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듯, 하나의 서재가 파괴되었다고 꿈도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집필 가능한 책들이 모두 집필되는” 끔찍한 날이 다가왔을 때, 루이스 캐럴은 말했다. “작가들은 어떤 새로운 책을 쓸지를 말해야 하는 대신, 기존의 어떤 책을 다시 쓸지 말해야 한다.” 신과는 달리 인간의 운명은 완성이 아니다. “우리는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서재가 파괴된 자리에서 책의 인간은 “다시 하라”는 명령을 듣는다. 상자에 갇힌 책을 해방시켜 완벽한 서재를 이룩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서재를 만드는 은밀한 꿈을 꾸어 간다.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처형을 앞두고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의 옷감에 수놓았던 문장이다. 책의 인간들한테 좌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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