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각획선 3]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중에서
우리 모두가 실천하고 있는 삶의 형식은
숙명과 성격이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숙명은 우리 앞에 실현 가능한 선택지들을 내보이죠.
그러나 그 중에서 선택을 하는 일,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를 버리는 일은 성격의 몫이에요.
모든 상황에는 하나 이상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죠.
지금 일어나는 일 대신 다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이란 없는 겁니다.
대안 없는 선택, 결정, 행동도 없고요.
틈날 때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들을 찾아서 읽는 중이다.
오늘은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나현영 옮김, 현암사, 2016)을 완독했다.
바우만의 말과 글을 읽을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에서는 희망이 부풀어오른다.
소비가 다수의 삶의 양식이 되고,
심지어 저항조차 하나의 소비처럼 되어 힘을 잃어버린 이 상황에서도
바우만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그는 저항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려고 움직이는 소수 속에
인류의 미래를 향한 씨앗을 심는다.
아아, 다음과 같은 말을 읽고 나서 어찌 좌절할 수 있단 말인가.
절망적인 선거를 1주일 앞둔 이 뼈 아픈 시기에도
삶의 모든 상황은 작은 도토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각 상황들의 총합이
위험과 함께 기회도 포함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사실이다.)
각각의 상황이 순응을 배태하고 있듯이
저항 역시 배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모든 다수가 아주 작고 보이지 않으며
눈에 띄지 않는 소수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맙시다.
100년 묵은 떡갈나무라 할지라도
아주 작은 도토리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