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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May 04. 2016

로스쿨은 아직 배신하지 않았다

사법시험의 신화에 덧붙이며



요즘 작은 취미가 생겼다. 밖에 나올 일이 생기면 편의점에 들러 신문을 산다. 단돈 8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지식치고는 과분할만큼 풍족하다. 집에 꼬박꼬박 두가지 종류의 신문이 배달되어 올 때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신기하다. 


소일거리로 시작한 취미인만큼 어떤 목적을 설정할 생각은 없었다. 혼자서 신문강독 스터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신문에서 괜찮은 글감을 얻어도 일부러 모르는 체 했다. 벌써부터 신문에 대한 강박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기사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다. 제목은 '노무현을 배신한 로스쿨'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19978864






제목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로스쿨의 설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과를 가름할때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장단을 체계적으로 비교하는 분석은 아닐 것 같았다. 많은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은 말한다. '개천용' 노무현이 사회 지배층으로 올라올 수 있는 마지막 사다리를 걷어찼노라고.그래서 그들은 로스쿨이 노무현이 범한 최대의 실책이라고 입을 모아 재잘댄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는 로스쿨의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하는 지적이다. 어째서 '개천용'이 법조계에서 나와야 할까? 법조인은 사람이 아니라 용이었단 말인가. 직업으로 법을 다룬다고 해서 남들보다 한차원 위에 서 있을 수는 없다. 하늘에 떠 있는 용은 없다. 모두 똑같이 땅을 디디고 서있는 인간이다. 그저 법을 다룰 뿐이다. 법조인들은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다룬다. 그렇지만 그것이 법조인들이 휘둘러온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화 하지는 못한다. '출세'에의 직결을 합리화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저, 그들은 법을 다룰 뿐이다.






차라리 '개천용'의 논리를 일관되게 견지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소신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본 기사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저격'글이다. 



기자는 최근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도박 혐의로 기소된 네이처리퍼블릭의 대표에게 보석 허가를 장담하며 50억원을 요구한 사실을 글의 말미에 덧붙인다. 그러면서 노무현이 꿈꾼 세상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말로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러는 걸까? 다음은 기사에서 발췌한 문구들이다.



(...) '획일,순혈' 문제의식의 근원이 엿보인다 (...)


(...) 출신 대학, 연수원 기수 등으로 얽히는 '법조 카르텔'을 해체하려 했는데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대학들에 로스쿨 인가를 내줘 일을 망쳤다는 한탄이었다. (...)




아니다. 기자는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법조인으로 활동하는데 있어서, 법조인이 되기 이전의 이력은 필요 없는 세상. 그렇게 같은 이력을 지닌 법조인들끼리 똘똘 뭉쳐 만든 카르텔이 없는 세상. 변호사가 돈 있는 사람의 편에 서지 않는 세상. 그게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었고, 그 올바른 세상의 이상적인 법조인 상이었다. 



그런데 왜, 기자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소송을 담당하며 거액을 요구한 변호사의 예를 들며 글을 마무리지었을까.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다. 오랜 세월 법조인으로 활동했음에 분명하다. 당연히, 사법고시 출신의 변호사다. 그도 그럴것이 로스쿨은 설립된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나.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격이다. 잘못은 사법시험 출신의 법조인이 했는데 배신은 로스쿨이 했단다. 






로스쿨에 붙은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있다. '현대판 음서제'다. 얼마전 이를 폭로한 로스쿨 교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사법시험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오류다. 문제가 발생했으면 원인을 제거할 생각을 해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하기 전에 육상의 활주로를 질주한다. 날아 오르면서야 바퀴를 집어넣는다. 당연히 비행 과정에서 바퀴가 걸리적거릴 것이다. 그렇다면, 바퀴를 기체 안에 집어넣을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맞다. 바퀴가 걸리적거린다고 바퀴를 없애버리면 비행기는 날아오를 수 없다. 



로스쿨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신상정보를 적어 내는 것은 분명 오류다. 그 오류가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오류를 제거할 생각을 하면 된다. 오류가 생겼다고 로스쿨을 폐지하는 것은 비행기의 바퀴를, 어쩌면 비행기 전체를 제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과도한 수임료를 받아 먹은건 사법시험 출신의 법조인이다. 로스쿨은 배신한 적이 없다. 배신을 확인할 만큼의 최소한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다. 



애당초에 원인을 제거할 생각이 있었다면 저런 타이틀의 기사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답정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로스쿨은 잘못된 제도다. 사법시험만이 정의고 노무현의 로스쿨은 실패작이다. 그런 결론이 정해져 있기에 이런 아전인수격 해석이 나오는게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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