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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야구장에 데려다 주오 (1)

뉴욕 메츠의 시티필드를 가다

by etinc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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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e Out to the Ball Game(나를 야구장에 데려가 주오). 메이저 리그에서는 7회말이 시작하기 전에 이를 스트레칭용 노래로 부르는데요. 1908년 Jack Norworth가 작사, Von Tizler가 작곡한 이래로 야구장에선 어김없이 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챔피언스필드에 ‘남행열차’ 내지는 ‘목포의 눈물’이 흐르고 사직구장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오는 것과는 느낌이 약간 다르지요. 전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노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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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기회를 잡아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버킷리스트의 항목 몇개를 지우기 위해 MLB 구장 투어를 노려 보았는데요.. 이게 웬걸. 한국과는 달리 한번 원정을 나갔다 하면 9연전이 기본인지라 반드시 보고 싶었던 양키스타디움과 펜웨이 파크에서는 정작 경기를 볼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짧은 여행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뉴욕 메츠의 시티필드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내셔널스파크에서 경기를 보았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파크에서는 구장 투어를 했고요. 한 주에 한편씩 짧은 소회를 올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주는, 시티필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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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처음 와서 가장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지하철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끝판으로 치닫는 타임스퀘어 바로 옆에 있는 지하철 역도 놀랄만큼 더럽더군요. 그걸 자신들만의 시그니쳐로 생각해서 굳이 보수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한번에 3달러씩이나 하면서 환승도 되지 않고, 곳곳에 쥐가 지나다니고 어두컴컴한 뉴욕의 지하철은 서울의 그것과는 너무나 대비되었습니다.


메츠의 시티필드가 있는 곳은 어쨌거나 택시를 타고 가기엔 너무 부담이 되었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맨해튼을 벗어나니 지상구간에 돌입해서 그래도 볼 맛이 좀 나더군요. 흔히들 생각하는 뉴욕의 마천루들이 더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고, 주택가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한참을 내달려 시티필드가 있는 Mets-Willets Point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에서부터 선수들 레플리카 저지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건 서울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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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운동장역에 내려서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글댑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구단 머천다이스를 판매하는 것도 그렇고요. 새삼스레 MLB 구장에 왔다는게 느껴지며 설레기 시작합니다. 이 곳의 야구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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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필드에 도착한 저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위 사진의 강아지였습니다. 세상에. 처음엔 로봇을 보는 줄 알았어요. 온갖 액션을 다 취할 줄 알더라고요. 마치 물개쇼를 보는 것 같아서 썩 맘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명물’처럼 여겨지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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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필드 전경입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야구장 중 하나지요. 이전의 셰이 스타디움이 뉴욕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지라, 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붉은 벽돌로 여러개의 아치를 이어낸 건축구조가 돋보였습니다. 딱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한편으로 시티필드의 CITI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CITI BANK의 그것인데요. 2009년 경기장 개장과 동시에 구장 이름을 가질 권리를 판매했는데, 그 액수가 무려 20년간 총 4억달러였습니다. 우리돈으로 연간 약 226억원을 지불하는 셈이고 아직까지 이는 세계의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비싼 값의 경기장 이름입니다. 문제는 당시 시티그룹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를 겪어 공중분해될 뻔했다가 금융 지원을 받고 간신히 살아난 상황이었는데요. 이런 빛좋은 개살구같은 입찰에 거액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방에서 십자포가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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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을 제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중입니다. 운이 좋게도 마침 ‘프리 셔츠 데이’여서 뉴욕 메츠의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나눠주는 중이네요. 던킨도너츠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 기준 XXL 사이즈의 티셔츠를 나눠주는 바람에 거의 로마시대의 토우가 같은 모양으로 입고다닐 수 밖에 없었답니다. 제가 키가 꽤 있는 편인데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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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는 52번이라는 번호가 일괄마킹되어 있었는데, 이는 메츠 최고의 스타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의 번호입니다. 처음 데뷔하고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가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리그 6년차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다소 굴곡있는 커리어를 보이고 있지만 워낙 스타성이 있다보니 등장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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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도 꼭 성적순대로 인기가 결정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메츠의 유격수 자리를 맡고 있는 호세 레예스 선수였는데요. 과거 메츠에서 세차례의 도루왕과 한차례의 타격왕을 수상하고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다가, 다시 메츠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과거의 영광과는 달리 현재는 멘도사 라인을 넘나드는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홈팬들은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습니다.

이에 대조되는 선수는 제이 브루스였습니다. 근 몇년만에 처음으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데도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OPS 0.872에 wRC+가 128, 홈런도 23개. 어떤 지표로 보아도 든든한 중심타자의 스탯입니다. 그럼에도 관중들은 한마음으로 그에게 엄지를 꺾어 내렸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옆자리 아저씨께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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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tard’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더군요. 무서워서 더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인터넷으로 조사를 좀 해 보니 브루스가 대도시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합니다. 하기사 신시내티같은 작은 프랜차이즈에서 뛰어왔고, 그에 대한 만족감을 공공연이 드러내 왔던 선수긴 합니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구단들은 흔히 빅마켓과 스몰마켓으로 구분되곤 합니다. LA, 시카고, 뉴욕 등의 대도시를 낀 구단들은 빅마켓으로 분류가 됩니다. 반면에 그저 그런 중소도시들이 연고지인 구단들은 스몰마켓이지요. 스몰마켓임에도 구단주가 돈이 유달리 많을 수 있지만, 선수들 역시 대도시의 화려한 생각을 좋아하는게 일반적이기에 뛰어난 선수들을 수급하는게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물론 브루스같이 대도시를 싫어하는 선수들도 당연히 존재하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사회적응장애라는 지병이 있어 스몰마켓을 선호해 왔던 잭 그레인키가 있습니다. 그레인키같은 경우는 캔자스시티에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잠재력을 꽃피운 바 있지요. 그 이후로는 큰 돈을 좇아 다저스와 애리조나로 가는 등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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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이 다소 길어졌네요. 시티필드에 들어왔습니다. 조망이 정말 끝내줍니다. 가난한 학생들인 저희로서는 아무래도 싼 좌석들을 골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요. 3층좌석에 들어갔음에도 경기장이 정말 잘 보여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구장 설계를 굉장히 잘 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단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관람에 편리했고, 층별로 입체적인 설계가 이루어져 조금 높고 먼 좌석에 있더라도 경기장을 한눈에 담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니콘 로고 아래에 붙어 있는 빨간 사과가 보이시나요? 뉴욕메츠의 아이콘, 빅 애플(Big Apple)입니다. 시티 필드 이전의 셰이 스타디움부터 있던 유서깊은 아이콘인데요. 메츠 타자들이 홈런을 치면 빅 애플이 솟아오르곤 합니다. 워낙 상징처럼 되어버린 구조물이라 새로운 경기장에도 모셔 왔습니다. 다만 이날은 공교롭게도 투수전이 진행되어서 빅 애플이 경기중에 등장하는 건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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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보면서 맥주 한 잔을 빼놓을 수 없지요. 얼마전부터는 KBO에서도 외부 주류 반입이 전면 금지되었지요? 여기도 마찬가지인데요. 거의 공항 수속에 준하는 수준의 검사가 구장 입장 전에 진행됩니다. 주류를 몰래 가져오는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구장 안에서 파는 음료를 즐겨야 하는데요. 미국 물가가 비싼걸 감안하더라도 만만찮았습니다. 저희가 들고 있는 맥주는 souvenir beer(기념 맥주)라고 하는 특별 세트였는데, 한잔에 $10.5를 호가했습니다. 우리돈으로 1만 2천원 정도 하겠네요. 플라스틱 컵과 맥주 한잔이 만이천원이라니요. 목구멍으로 훌쩍 넘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마시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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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진행되면서 한없이 높고 맑던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갑니다. 해질녘의 풍경은 전세계 어디에서 봐도 아름답겠지만, 이토록 멋진 야구장에서 보는 느낌은 색달랐습니다. 잊기 힘든 경험일 것 같아요. 관중들도 그런 한때를 여유로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여유가 KBO와 MLB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야구장에서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달리잖습니까. 치어리더들이 방방 뛰고, 응원단장들은 악을 지르고. 우리는 선수마다 흘러나오는 응원가를 목청껏 외치고. 여기는 그런게 전혀 없습니다. 간혹 환호성이 터져나오긴 하지만 우리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라요. 돗자리를 깔고 한강공원에 누워있는 모양과 더 닮아 있습니다.


이런 미국의 야구를 일컬어 ‘The National Pastime’이라고 합니다. 전국민의 여가시간, 정도로 번역하면 적당할까요? 직접 구장에 가보니 이 말이 미국인들에게 야구가 가지는 느낌을 정말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야구는 생활입니다. 습관처럼 야구장에 방문하고, 익숙한 자리를 잡고 맥주와 핫도그를 마시며 경기를 구경합니다. 9이닝 내내 집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려고 온게 아니니까요. 그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순간순간을 즐기는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여유는 꼭 야구 경기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파아란 그라운드와 푸른 하늘, 시원한 맥주 한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야구 문화와 비교했을 때 어느게 더 못하고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제각기 의미있는 특색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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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대팀이 강제 리빌딩중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여서 그런지 수준높은 양상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메츠의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이 7이닝동안 삼진 12개를 빼앗는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습니다. 95마일을 넘나드는 패스트볼과 12-6으로 떨어지는 파워커브에 관중들은 들썩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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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빠르게 마무리되고 사람들은 지하철에 오르기 위해 자리를 황급히 비웠습니다. 우리나라도 경기가 끝날 즈음이 되면 만원 지하철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재빨리 어디론가 가잖아요? 그 모습이 겹쳐져 보여 새삼스럽지만 신기했습니다. 경기의 여운을 조금 즐겨보려 했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청소부 아저씨들이 남은 관객들을 모두 쫓아냈습니다.


이렇게 제 첫번째 메이저리그 관람이 끝났습니다. 다음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홈구장 내셔널스파크를 방문한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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