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집 앞 편의점이 세상을 구원할 때까지.
꽤 오래전 김애란 작가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동네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소재로 이십 대 초반 신예 작가의 재기 발랄한 화법과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편의점은 관계와 습관,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알지만 동시에 모르는 이들이 연기하는 무대의 제3막이다. 연출이나 대본은 없지만 편의점 한쪽 구석에서 카메라는 돌아간다.
소설 제목이 독특했다.
야근을 마치고 할증 붙은 심야 택시를 상대원 고개에서 내린 후 별빛 하나 없는,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골목 담장 쪽으로 기운 전신주와 치렁치렁 늘어진 전선으로 인해 거미줄처럼 가려진 도시의 새벽하늘을 올려보다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 오늘은 하루가 정말 힘들었어!"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다 보면 간판이 켜진 편의점들이 지친 내 발걸음을 유혹한다.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와 감자칩을 사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곤 한다.
캔맥주 하나 정도를 제외하면 나는 야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밤 열 시가 넘으면 허기가 져도 웬만하면 참는다. 혼자서는 기름진 야식을 시켜 본 적이 없다. 양념통닭이나 보쌈 같은 야식을 시켜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본능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자정과 새벽 사이의 '허기'를 지금까지 잘 참아왔다.
하지만 편의점은 가끔 들른다. 소소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편의점에선 필립스 면도기는 팔지 않는다. 양문형 냉장고도 팔지 않는다. 압력밥솥이나 진공청소기도 팔지 않는다. 편의점은 이마트와는 다르니까. 한 번은 자정이 좀 넘었을 무렵 편의점을 들러서 턱을 괸 채 졸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산악용 자전거]를 파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졸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훅 잠이 달아나는가 싶더니.
"손님, 저희 편의점에서는 산악용 자전거는 팔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말투는 짧고 공손했지만 다소 황당한 표정이었다.
점원의 말처럼 편의점에서 파는 것들은 대부분 소소하다. 생수, 담배, 술, 과자, 신문, 잡지, 일회용 칫솔, 대개는 손이나 입이 심심한 나 같은 소시민들을 위한 생필품이나 주전부리들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산악용 자전거를 물어본 것은 거기에 분명 팔 것 같은 채 비닐 포장이 뜯기지 않은 산악용 자전거 두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나는 그걸 당장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주로 사는 것들은. 생수, 바나나우유, 삼각김밥, 컵라면, 생감자칩, 샌드위치, 일회용 면도기나 칫솔, 그리고 다음날 신을 이천 원짜리 양말 같은 것들이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혼자다. 우유 하나, 생수 한 병. 그들의 결핍은 소소하다. 편의점은 그들의 소소한 결핍과 욕망을 판다. 소소한 결핍으로 이루어진 거래를 통해서 관계 맺기와 습관을 반복한다. 하지만 관계는 서툴고 가볍다.
점원을 제외하고는 조금 전 바나나 우유값을 치르던 교복 입은 여학생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점원조차도 내일이면 바뀔지도 모르니까. 우주적 시각으로는 그런 비껴감마저도 기적이다. 관계의 가벼움이 비단 이곳 편의점뿐일까만은.
점원은 생수를 건네고 나는 생수값을 지불한다. 습관은 지루하게 반복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점원은 머리스타일이 바뀌었다. 나는 점원을 알지만 점원은 나를 모른다. 편의점에서 생수나 화장지를 사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니까.
편의점을 나오는 순간. 습관은 정지되고 관객이 없는 무대는 끝나고 관계는 사라진다. 손에 남은 것은 생수 한 병뿐. 나는 습관적으로 병뚜껑을 따고 목을 축이고 그리고 빈 병을 이 편의점의 골목 어딘가에 던져 놓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지루하다는 듯 트럭 밑으로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