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분 후의 A

by 김인철

우리는 평일 저녁 아홉 시에 만나기로 했다. 여덟 시 오십 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별 일이 없으면 항상 십 분 전에 도착한다. 어제도 그랬고 일주일 전에도 그랬고 한 달 전에도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십 분 전의 사람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사진출처-pixabay

내가 잘 아는 A는 십 분 후의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A는 종종 B와 만난다. B는 정각의 사람이다. 우리 셋은 회사에서 알게 된 동료다.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친구다. 우리는 살아온 시간이 다르듯 시간의 관점이 다르다. 삶의 태도와 방식도 다르다. 다름을 비난하지 않고 인정한다.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동료에서 친구가 된 이유다.


나는 언제나 약속 장소에 십 분 전에 도착하고 A는 늘 십 분 후에 도착을 한다. B는 만나기로 한 그 시각에 도착한다. 십 분 전의 나는 십 분 후의 A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본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까치발을 하거나 뒷걸음질을 한다. 나를 경계하며 지나가는 고양이를 본다. 그 사이 B가 도착한다. 만나기로 한 그 시간이다. 그리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십 분 후 A가 도착한다.


우리는 왜 늦었냐거나 일찍 왔냐거나 혹은 정각에 왔냐고 묻거나 타박을 하지 않는다. 단지 만나서 하기로 한 것을 한다.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신다. 일주일 전의 외로움을 삭이고 한 달 전의 분노를 녹이고 언젠가 찾아올 장밋빛 희망을 나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A와 B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온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식어버린 삼겹살을 뒤적이다.


십 분 전의 나나 십 분 후의 A나 정각의 B나 헤어질 땐 대게 왔을 때와 똑같이 헤어진다. 그런데 저기 소주가 엎질러진 원형 테이블은 왜 저럴까? 얽히고 뒤엉킨 자리에 남은건 엎질러진 물과 병들이다. 하기사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니니까. 그럼 이 세상은 참 밋밋할테니까. 그래도 십 분 전이나 십 분 후나, 정각이나 무슨 차이가 난다고 그렇게 아웅다웅인 건지... 인생이란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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