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월간 스토리 문학 신인상 당선작
*2018년 2월 7일 개정
1.
“이 자식이 꼬라 보긴 뭘 꼴아봐.”
대낮부터 술이 취한 듯 보이는 사내가 얼굴이 시뻘게 진채 나를 향해 한바탕 욕지거리를 해댄다. 남자는 여차하면 내 멱살이라도 잡을 태세다. 술에 취한 남자의 두 눈은 이미 동공이 풀린 상태다. 사내는 온몸을 비틀거리면서도 한 손에는 술병을 든 채 삿대질을 해댄다. 대낮부터 동공이 풀린 남자의 표정을 정면에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다.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괴상하게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이 남자가 지금 왜 나한테 이토록 화를 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장애인 대상 IT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늘과 같은 일을 당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도 역시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이 사내와 한바탕 할 수도 없다. 그러기엔 내 한쪽 다리가 너무 짧았고 남자의 신체는 크고 건장하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던 김 간사가 밖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김 간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고 기겁을 하더니 재빨리 옆 강의실로 들어가서 영어선생과 컴퓨터 선생을 데리고 나왔다.
“국장님 무슨 일이에요?”
영어선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달려오더니 연인처럼 밀착되어있던 술 취한 사내와 나를 갈라놓았다. 영어선생은 인사불성인 사나이만큼 체격이 좋았다. 방금 전까지도 기세 등등하던 남자는 두 남자가 나타나자 한 풀 기가 꺾인 듯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낙엽이 쌓인 나무벤치 위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상황을 눈치챈 영어선생의 얼굴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지며 누워 있는 남자에게 다가섰다.
“영어 선생님, 별 일 아니니까 그만 들어가시죠! 성 선생이랑 김 간사도 그냥 들어와!”
방금 전 남자와의 실랑이 탓인지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벌건 대낮부터 술에 취한 걸 보면 행패를 부리던 사내도 알 수 없는 고통이 그의 내면을 괴롭히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상 한편엔 내일까지 시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수북하다. 나머지는 김 간사에게 맡기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담배가 없다.
“진성아 담배 있으면 하나만 주라.”
힐끗 옆을 보니 방금 전의 그 술 취한 남자는 사라지고 없다. 오후가 되자 협회 사무실은 컴퓨터 교육생으로 북적거린다. 유림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두 번째 홈페이지 교육생을 모집할 때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IT 교육 관련 문의 전화가 왔다. 그 무렵 유림이도 엑셀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유림이는 다리가 불편하지도 않았고 팔도 멀쩡했다. 그녀는 정상인이었다. 장애인과 노인을 우선으로 교육생을 받는 것이 협회의 원칙이다. 이미 정원이 다 찬 상태라 더 이상 회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유림이는 다음날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나는 결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곁에 있던 김 간사도 그녀의 간절함에 눈짓으로 동의하는 듯했다. 유림이는 성격이 밝고 명랑했다. 작고 갸름한 얼굴에 항상 엷은 미소를 띄었다. 그녀는 같이 있으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긴 생머리를 날릴 때마다 은은히 풍기는 그녀의 향기도 좋았다. 거리를 거닐 때마다 코를 확 찌르는 듯한 자극적인 여자들의 향에 얼굴을 찌푸리곤 했었는데 은은히 풍겨오는 그녀의 체취는 왠지 모르게 좋았다.
“유림씨는 오늘 안 올 건가 봐요?”
옆에 앉아 있던 김 간사가 힐끗 나를 바라보며 보며 말했다. 김 간사는 내가 유림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후에 홈페이지 반 수업이 끝나고 저녁이 될 무렵 유림이가 사무실에 들어오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버렸다. 처음엔 그 사실을 몰랐다.
“왜 나만 들어오면 사람들이 모두 나가버리지?”
“설마, 국장님 바보예요.”
유림이의 이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매일 시청 복지과와 관련기관에 보내야 할 서류더미에 파 묻혀서 지내는 내게는 이때가 가장 바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신경의 한쪽은 유림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서랍을 뒤지는가 하면 김간 사의 옆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며 깔깔깔 웃어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나를 불렀다.
“국장님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나 지금 바빠.”
그녀는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틈만 나면 말을 걸어왔고 어떻게 해서라도 대답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국장님, 이거 드세요.”
유림이었다. 뒤늦게 나타난 그녀의 왼손엔 붕어빵 한 봉지가 들려 있다. 불쑥 붕어빵을 내민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배 안 고파.”
“그럼 나중에 사무실 사람들 나눠 주세요.”
유림이는 붕어빵을 내 책상 위에 툭 던져놓더니 서둘러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유유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과 책상 위에 던져진 붕어빵을 번갈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갑자기 사탕을 한 아름 들고 와서는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는 특효약이라면서 사람들에게 한 움큼씩 사탕을 쥐어 주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붕어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팥 앙금이 한쪽으로 쏠려서 금방이라도 붕어를 헤집고 나올 것 만 같아 재빨리 입에 넣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교육실에서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만 해도 키보드 두드리던 소리 외에는 조용하던 교육실이 그녀 때문에 시끌벅적해졌다. 가만히 벽에 귀를 갖다 대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 국장 거기서 뭐해?”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중고 컴퓨터 매입 건 때문에 여주로 출장 나가셨던 회장님이셨다.
“거, 머냐 교육장 지원 사업 선정 신청 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교육생 숫자며 컴퓨터 보유 현황 등등 아직 후원사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담당자도 벌써 몇 번 씩이나 찾아가서 만나야 했다. 교육장 지원 사업에 신청한 기관이 우리말고도 십여 군데나 더 있어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컴퓨터도 절반 이상 고장이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컴퓨터도 아주 느려서 한글이나 엑셀, 포토샵 같은 최근에 나온 프로그램은 설치도 할 수 없다. 교육생들이야 배우는 입장이니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불만은 학생들을 직접 가르쳐야 하는 컴퓨터 강사들에게서 나왔다.
“오후에 후원사 담당 대리가 이쪽으로 오기로 했어요. 이번 기회에 회장님도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보시죠?”
지원 담당자는 26세의 젊은 아가씨다. 직책은 대리다. 깡마른 체형에 얼굴은 약간 계란형으로 미인이었지만 눈매가 날카로웠다. 언제나 사무적인 말투에 정장만 입고 있어서 처음엔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원사는 국내 유명 컴퓨터 제조 회사다.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장애인 단체나 복지기관을 선정한 후 자사에서 만든 교육용 컴퓨터를 지원하고 교육장소 또한 새로 지어준다. 담당자는 팀장과 같이 왔다. 교육장 사업계획안을 바라보는 송대리와 팀장의 시선이 사뭇 무겁고 진지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 기분이다. 시청 서류도 복잡하고 사람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이번 후원사도 관공서 못지않게 까다롭다. 담당 대리는 팀장과 상의를 하더니 사업 계획안 중에서 몇 곳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도 뚜렷한 확신을 주지 않았다.
2.
“국장님 오늘 저녁에 회식 한 번 하죠?”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자 김 간사가 회식 얘기를 꺼냈다. 생각해 보니 협회 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먹어 본 지도 꽤 오래다. 그날 회식의 마지막 코스는 나이트였다. 기껏해야 노래방이 회식의 마지막 코스였지만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나이트클럽으로 이끈 사람은 유림이었다.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다리가 불편한 내가 문제였다.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나이또, 나이또!”
유림이가 손을 위아래로 번쩍 치켜들면서 연신 나이트를 외쳐댔다. 몇 잔 들이켠 술 때문인지 나도 오랜만에 나이트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클럽 입구로 들어서는데 속칭 삐끼들이 양쪽에 서서 ‘어서 옵쇼’ 라며 허리를 구십도 가까이 숙였다. 삐끼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클럽 안은 한차례 댄스 타임이 끝났던지 무대 위에선 서너 커플들이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고 있다. 그 사이 한 남자가 꽉 껴안은 여자의 입술에 기습 키스를 한다.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남자의 가슴을 몇 번 토닥였지만 그리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각 테이블엔 술 취한 남녀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기들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다시 빠른 댄스곡이 나오면서 클럽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오랜만 이어서일까? 아니면 남들을 의식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목발을 김 간사에게 맡기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댔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런 내 모습을 신기한 듯이 사방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힘껏 춤을 췄다. 어느새 내 주위로 김 간사랑 컴퓨터 선생과 영어선생 그리고 교육생 몇 명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유림이는 자리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순간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몇 초 정도 흘렀을까? 유림이는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무대 위의 백댄서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귀를 찢어 버릴 것 같던 음악이 멈추고 부드러운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자 모두들 자리로 돌아간다. 유림이 옆에 앉은 나는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어 댄 탓인지 갈증이 난다. 앞에 있던 맥주 한 병을 들이켰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서 남자가 한 명 다가온다. 내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귓속말로 유림이와 춤을 추고 싶다고 한다. 나는 엉겁결에 사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유림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툭 밀치며 말했다.
“야, 서진하. 뭐 이따위 매너가 다 있냐? 너 저 남자 뺨이라도 한 대 갈겨야 하는 거 아냐?”
그러면서 유림이는 무작정 나를 끌고 무대로 나갔다.
“방금 내가 실수한 거야?”
춤을 추면서 귓속말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실수 한 거지 뭐예요. 여자끼리만 온 것도 아닌데... .”
클럽 안은 다시 사이키와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거린다. 비트 빠른 음악이 테이블과 벽을 쾅쾅 울린다. 얼굴이 불콰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대 위로 올라간다. 이제 그만 나가자는 분위기다. 유림이가 자기는 이제야 필이 받는데 벌써 나가면 어떻게 하냐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추자고 한다.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서 춤을 추고 있을 때였다.
“야, 오늘 여기 물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요즘 나이트엔 병신도 출입시키나 보지?”
“그러게 말이다. 꼴사납기는 저것도 춤이라고... .”
옆에 있던 남자가 그 사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무대 바로 앞 테이블에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일행 중 남자 하나가 이쪽을, 아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나를 힐끗 쳐다보며 남자를 말렸다. 남자는 술에 떡이 되어서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야 이 병신자식아 뭘 봐! 그것도 춤이라고 추는 거냐?”
“재석 씨, 그만해요. 저 사람이 쳐다보잖아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번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방금 나를 쳐다보면서 비웃던 남자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테이블 위에서 잠시 업치락뒤치락 하던 남자와 나는 곧 무대 위로 나자빠졌다. 무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내 주위로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남자가 위에서 누르고 있어서 나는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주먹을 들어 내 얼굴을 가격 하려는 순간 급하게 달려온 웨이터와 영어선생이 남자를 떼어놓았다. 사람들에게 붙들려 가던 남자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더니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술에 취한 탓인지 아니면 격렬한 몸싸움 때문이었던지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누워 있고 싶었다. 바닥에서 울려대는 묵직한 스피커의 진동이 내 온몸을 두들겼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것들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 받은 나의 영혼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천장에서는 여전히 휘황찬란한 조명이 빙글빙글 돌며 술에 취한 사람들을 더욱 어지럽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유림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한동안 유림이는 협회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 주에 있을 홈페이지 기초반 수료식 준비로 정신이 없다. 이천, 여주 등 지부에서의 잦은 회의로 한동안 밖으로만 돌아다녀야 했다. 오늘도 회장님과 수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막 들어서려는데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선호야 다시 한번 말해 봐.”
“어어엉...어...엉.”
선호가 자판기 앞에 서서 음료수를 꺼내려는 듯 말을 한다. 그 앞에 유림이가 당황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선호는 계속 손가락으로 자판기를 가리키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유림이가 나를 보더니 살았다는 듯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국장님, 선호가 아까부터 자판기를 가리키면서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어요.”
“선호야 음료수 마시고 싶어?”
“어어...자아파기...커어어... .”
“자판기 컵이 떨어졌다고? 그래 알았어, 다시 채워 넣을게.”
선호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듯 다시 가방을 주워 매더니 교육장으로 향했다. 머쓱해진 유림이는 자기가 자판기에다 컵을 채워 넣겠다며 열쇠를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녀의 향긋한 체취가 마치 어제 맡았던 것처럼 낯설지 않다. 한 번 익숙해진 냄새나 형상은 그 대상이 사라져 버려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 체취를 느낄 때면 지난날의 추억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나는 문득 그날 밤 나이트에서 유림이가 내게 보였던 눈물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그리고 왜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는지도 묻고 싶었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김 간사에게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판기에 컵을 넣겠다던 유림이는 아직도 열쇠 구멍을 못 찾았는지 아까처럼 얼굴이 빨갛다.
퇴근 무렵 형태가 찾아왔다.
“어이, 서진하. 잘 지냈어?”
형태는 처음 장애인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시작했던 초창기 멤버다. 지금은 이 골치 아픈 일들은 다 나한테 맡겨버리고 법원에서 경매를 하고 있다. 그는 한쪽 팔이 없다. 장갑을 낀 의수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얼핏 보면 정상인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는 다른 팔에도 깁스를 하고 있다. 며칠 전에 포장마차에서 친구랑 술을 먹다가 옆에서 술을 먹던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아, 글쎄 그 씨벌 놈이 술을 쳐 먹더니 눈에 뵈는 게 없던지,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시비를 거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자꾸 이러시냐고 술 그만 드시고 나가시라고 했더니, 글쎄, 이 새끼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저런 병신 새끼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러는 거야. 그 말 들으니까, 확 돌아버리겠더라고. 그래서 그 자식이랑 한바탕 붙고 난리 났지 뭐. 그때 어디를 잘못 쳤던 모양인지 다음날 일어나 보니까 손이 엄청 부어있더라고. 경찰도 자초지종을 듣고 나더니 그 새끼한테 막 뭐라고 하더라. 그나저나 진하 너, 요즘 좋은 일 있다면서?”
형태는 뭘 알고 있다는 듯 비실비실 웃어대며 물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유림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김 간사 아니면 회장님이시겠지.
“야, 임마, 허튼소리 그만하고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좋은 경매 물건 좀 건졌어?”
“아이구야 말도 말아라, 계속 실패만 하다가 얼마 전에 겨우 일억 넘는 건물 하나 낙찰받았는데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지금 죽을 맛이다. 세상 참 엿 같은 게 말이야. 집주인 놈이 그 집을 담보로 은행 몇 군데서 대출받고 튀어 버렸나 봐! 세입자가 하도 못 나가겠다고 버티길래 한 번 찾아가 봤더니 집안 꼬락서니 하고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쌍한 인생이지 뭐냐? 애 둘 딸린 홀아비에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친구도 나처럼 한쪽 팔도 없더라고.”
3.
형태가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집 근처에 아귀찜 잘하는 곳이 있다. 맛도 맛이었지만 차가 없이는 먼 거리를 갈 수 없는 나를 위한 배려일 경우가 많았다. 식당이나 호프집 안에서도 되도록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형태와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술 몇 잔을 들이켜는 사이 김 간사가 영어선생이랑 교육생 몇 명과 함께 들어왔다. 물론 교육생 중에는 유림이도 있었다. 유림이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주량이 기껏해야 맥주 반잔 정도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그녀가 소주 몇 병을 마신 나나 형태보다도 더 취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콜라를 마시고도 소주 두 병을 마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마 이 도시 안에는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유림이는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그녀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어디 봐요, 어디 봐.”
얼큰하게 술이 취한 형태가 유림이에게 다소 야한 농담을 건네자,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유림이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형태의 앞가슴을 풀어헤치려 했다. 형태는 기겁을 하며 도망을 갔고 잘못했다며 두 손을 모아 그녀에게 삭삭 빌었다. 그녀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까만 눈동자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위로 살짝 말려 올라간 그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컵을 갖다 대면서 위로 살짝 도드라진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것도 그녀만의 독특한 버릇이었다. 맥주를 한잔 마시고 나더니 갑자기 유림이가 내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식당을 나와 이차로 호프집에서 한잔 하고 있을 때였다.
“맞다, 국장님 노래 들어본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우리 노래방 가죠?”
김 간사가 유림이의 말을 듣자 잘 됐다는 듯이 맞장구를 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위기는 노래방으로 기울었다. 영어선생과 몇몇은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나와 형태 그리고 김 간사와 유림이 이렇게 넷만 남아있었다. 한동안 발길이 뜸하던 우리를 보자 노래방 주인아저씨는 무척 반가워했다. 그동안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지 예전의 퀴퀴하고 침침하던 내부가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유림이의 흰 배꼽티가 형광색으로 빛났다. 형태와 김 간사도 노래를 한곡씩 부르고 나서 전화를 받더니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사실은 전화가 온 것이 아니라 아무 번호나 눌러대고 자기들이 먼저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서 비치는 넓은 화면에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흑인 여가수가 나온다. 그녀는 여러 명의 백댄서와 함께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요란한 화면과는 어울리지 않게 둘이만 남은 이 작은 공간에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방금 전만 해도 쾌할하게 웃던 유림이도 둘만 남은 공간이 어색했는지 노래책만 뒤적인다.
“시간 흘러가잖아, 빨리 선곡해!”
그렇게 말했던 것은 나도 딱히 부를만한 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책을 뒤적이던 유림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녀가 고른 것은 서영은의 “내 안의 그대.”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뒷모습이 빨강과 파랑, 그리고 번갈아 노랑으로 투영되는 조명 아래에서 상당히 섹시한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잊고 있었던 아니 일부러 잊으려 했던 여자를 향한 본능이 저 밑에서부터 되살아난다. 유림이가 반주에 맞추어서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좌우로 흔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 가냘픈 허리를 감싸 안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이 두 손을 타고 올라와 온 몸으로 전해진다. 유림이는 깜짝 놀란 듯 잡고 있던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내 쪽으로 돌리면서 살짝 위로 도드라진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혀를 내밀어 그녀의 두 입술을 열었다. 부드럽게 휘말린 혀는 그녀의 작은 입 속에서 뜨거운 타액과 섞인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황홀함에 휩싸인다. 나이트에서 병신이란 말을 들었을 때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텅 비어버린 것은 하얗게 채워진 생각뿐 내 몸의 모든 감각은 유림이의 체취와 살결, 아니 그녀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어머, 두근거리는 이 심장 소리 들려요?”
잠시 이성을 잃어버렸던 나는 뺨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림이는 우습게도 그녀의 조그마한 귀를 내 가슴에 갖다 댄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는 처음 들어요.”
어리둥절해진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한동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그녀의 입술을 빼앗긴 것에 대한 경멸이나 증오의 눈빛이 아닌 신기함과 놀라움의 눈빛이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키스를 했고 한동안 우리는 열정적인 키스와 파르르 떨리는 눈짓으로만 대화를 주고받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노래는 화면 속 빈 글자에 파랗게 채워진다. 노래는 슬펐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의 육체와 영혼은 슬프지 않았다. 테이블이 흔들렸던지 옆에 걸쳐 놓았던 목발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길을 가다 딱딱한 무언가에 다리를 부딪혔을 때처럼 둔탁한 소리는 감각이 없는 다리의 신경을 타고 올라와 통증을 관장하는 뇌 속으로 흘러들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심장은 여전히 크게 두근거린다. 그녀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렇게 큰소리로 울려대는 심장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내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심장의 고동소리, 소리 없이 들려오는 노랫말처럼 어쩌면 심장이 고장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속이 쓰리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다.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까지 난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북어 국을 후루룩 마셨더니 한 결 편하다. 어젯밤의 기억은 유림이와의 키스하는 그 순간에 멈춰 있다. 필름이 다 돌아가 버려 정지된 화면처럼 그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날 바래다주었던 것일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문을 나서려고 목발을 찾는데 지지대 한쪽이 부러져 있다. 웬 아가씨가 부러진 목발을 들고 날 부축해 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예전에 쓰던 목발을 가지고 나왔다. 차문을 여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국장님, 아니 진하씨...다리 부러뜨려서 미안해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진하 씨를 놓치지 않으려다 그만 목발을 도로에 떨어뜨렸고 지나가던 차가 그걸 밟고 지나가 버렸어요.”
핸드폰에 빽빽이 수많은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다른 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진하 씨?”
핸드폰 액정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두자가 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나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나의 이름은 방금 그녀가 불렀듯이 진하가 틀림없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두 개의 컴퓨터 교육실에서 교육이 진행 중이었다. 영어 강의실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굳어진 혀를 꼬부라트리며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언제나 진지하고 별로 말이 없는 영어선생이 오늘은 웬일로 학생들을 웃겼던 모양이다. 김 간사가 나를 보자마자 잔소리다.
“국장님, 술을 먹었으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서 빨리빨리 출근해야지, 지금이 몇 시예요? 그리고 방금 유림 씨에게서 전화 왔었는데 오늘 독일에서 누가 올 거라고 공항에 마중 나가야 한다면서 못 온다고 했어요.”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건데?”
“에이, 국장님도 다 알면서 모른 척 하기는... 어제 우리 가고 나서... .”
“그 문서 내일 수료식 할 때 교육생들에게 줄 수료증이지? 이리 줘봐! 그리고 오후에 교육장 지원 문제로 담당자랑 상무가 온다고 했으니까, 교육생 현황이랑 워드 자격증 관련 서류 다시 정리해서 프린트해줘! 아, 그리고 각 기수별 교육생들 취업 현황도 파악해서 알려줘.”
김 간사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독일에서 누가 오는 걸까?”
“자넨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회장님이 소파에 앉아 있던 여경이에게 말을 건넨다. 여경이는 뇌성마비 2급이다. 이번 교육생 중에서 성적이 가장 좋다. 하지만 여경이는 대답 없이 회장님을 보며 고개를 기웃하거나 생글거린다. 회장님은 한 번 더 묻는다. 그러나 여경이는 여전히 웃기만 한다. 협회 사람들이 여경이와 대화를 하려면 항상 종이와 연필이 필요했다. 여경이 말고도 서너 명이 더 있다. 대화를 위한 도구로서 입이나 소리가 아닌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편함. 낯섦. 이질적임. 그러나 달리 보면 서두르기보다는 차분해지는 시간, 그래서 상대를 좀 더 배려할 수 있는 시간. 그런 여유가 아닐까. 불편함에 익숙해지면 여유가 생긴다. 회장님은 그런 불편함에 가장 익숙한 분이다. 그러니까 회장님은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 질문을 했다. 뇌성마비 환자들의 특징은 항상 웃음을 놓지 않는다. 아니 놓지 못한다.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고, 아파도 웃는다. 그들에게 웃음을 관장하는 뇌 속의 어느 부분이 특별하게 더 발달되어 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럴 때면 소아마비인 나는 슬펐다. 여경이는 여전히 회장님을 보며 생글거린다. 허허허. 회장님도 웃는다. 하하하. 나도 웃는다. 김 간사도 웃는다.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어 버린다.
“서 국장, 여기서 교육받은 학생들 중에서 지금까지 취업한 인원이 모두 몇이나 되지?”
기껏해야 십여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숫자를 모르실리 없는 회장님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의아했다.
“한 열 명 정도 되지?”
“아마 그 정도 될 거예요.”
“내가 왜 이런 질문 하는지 알아?”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날고 긴다 하는 서울 관내 명문대학교의 학생들도 취업을 못해서 난리인데 이곳에서 겨우 몇 개월 교육받고 더군다나 장애인들이 일반 기업체에 취직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아직 이곳의 정보화 교육은 초급 과정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던 후원사 송대리다. 지금 상무와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급하게 보여주어야 할 서류는 작성했다. 담배를 물며 하늘을 보니 잔뜩 비를 먹은 구름이 서서히 파란 가을 하늘을 덮고 있다. 잠시 후 무거워진 머리 위로 가벼운 빗줄기가 쏟아진다.
4.
월요일이다. 장마는 끝났지만 하늘에서는 사흘 째 비를 뿌린다. 어제 우중에 교육생 수료식을 무사히 마쳤다. 다음 교육은 일주일 후부터다. 사무실은 고요하다. 김 간사와 나 둘 뿐이다. 김 간사는 재미난 기사라도 찾았는지 컴퓨터 화면을 보며 키득거린다. 오전엔 택배기사만 한 명 다녀갔다. 오후다. 오가는 자동차 소리만 요란하다. 교육생들로 북적이던 사무실은 적막하다. 햇볕을 삼켜 버린 구름 때문인지 사무실은 불을 켜놓아야 할 정도로 어둡다. 작은 창은 돌에 맞아 마치 거미줄처럼 장방형으로 금이 가있다. 창밖의 건물이나 사물들은 빗물에 번져 흐릿하다. 후드득. 빗소리가 창을 때린다. 창을 때리는 비 소리는 나의 상념들을 바깥으로 돌려놓는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김 간사가 유림 씨라며 나를 바꿔준다. 어제 수료식 때 받은 선물을 깜빡 잊고 사무실에 놓고 왔다면서 자기가 올 때까지 퇴근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가져가면 안 돼?”
“오늘 꼭 가져가야 해요.”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가야 해.”
“안 돼요.”
“일곱 시까지 와.”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올게요.”
“맘대로 해.”라고 말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 간사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키득거린다. 김 간사는 시부모님 댁에 가야 한다며 일곱 시가 되기 전 사무실을 떠났다. 어둑해진 하늘 위에선 아직도 쏟아부을 비가 남았는지 검은 구름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여덟 시가 넘었지만 유림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려고 하는데 현관문 앞에 서서 유림이가 문을 두드린다. 우산도 없이 비를 쫄딱 맞은 그녀의 왼손엔 못 보던 목발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잘 부러지는 나무가 아닌 알루미늄으로 만든 목발이다.
“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
비에 젖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그녀가 말했다.
“소주나 한잔 할래?”
“맥주 사 줘요. 전 소주 못 마시잖아요.”
술을 마시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호프집은 다소 한산하다. 여전히 그녀는 맥주를 마시기 전에 입술을 삐죽 내민다.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것도 여전하다. 그 얘기를 해 줬더니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하면서 시침 미를 뗀다. 그대로 흉내를 내보였더니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술을 마시던 유림이의 눈길이 비가 내리는 창가와 그녀의 손목시계를 번갈아 향한다.
“다른 약속 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손님이 와서 일찍 들어가 봐야 해요.”
하늘에서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는 거리의 자동차와 건물과 사람들의 형체를 흐릿하게 흩트려 놓는다. 뿌옇게 흐릿해진 사물들 속에서 오직 유림이와 나만이 작은 우산 속에서 완전한 형태를 유지했다. 갑자기 그녀를 안고 싶었다. 빗물에 젖은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녀는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내 허리를 움켜쥔다. 촉촉해진 입술에 키스하고 싶었다. 두 손으로 그녀의 작고 갸름한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유림이의 두 눈은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하려는 행동에 대하여 싫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약간 비릿한 빗물 내음과 향긋한 그녀의 체취가 한꺼번에 코를 자극했다. 그 순간 알루미늄 목발이 빗물에 미끄러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유림이가 두 손으로 어깨를 밀치려 하자 나는 더욱더 세게 그녀를 껴안았다.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지금 빗물에 다 흐트러져 있어, 사람 아니야.”
유림이도 더 이상은 나를 떼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온전히 비를 맞으면서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서 있었다. 잠시 후 지겹도록 내리던 비가 멈춘다. 흐트러졌던 주위의 사물들은 다시 자동차로 건물로 사람으로 각자 제 모습을 찾는다. 그 사이 빈 택시 하나가 우리 앞에 멈춘다.
일주일 후 송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제출한 서류 중 하나가 잘못되었다며 정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간사가 작성한 워드 자격증 관련 서류였다. 서류 심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서 오늘 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사무실은 다시 교육생들로 북적인다. 컴퓨터 교육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유림이는 오지 않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전화를 하면 통화 중이거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원의 음성뿐이다. 이따금씩 김 간사를 통해서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독일에 있던 그녀의 전 남편이 한 달 전에 귀국했다는 소식과 다섯 살 난 딸이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남편의 귀국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딸의 소식은 내게 충격이었다.
이차 서류 심사에서 우리를 포함한 3개 단체가 최종 심사에 올랐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숨이 막힌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진다. 자신도 선정 일자를 알 수 없다고 말하던 송대리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는 정말 몰랐을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벨이 울린다. 피싱 전화다. 벨이 울린다. 이쪽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상업적인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는 부동산업자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전화선을 타고 가서 남자의 주둥아리에다 불을 질러 버리고 싶다.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기다리는 건 잘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여자 주인공의 말처럼 이번 일도 그랬다. 기다리는 것은 잘 오지 않는다. 기다림의 대상을 기다리지 않을 때, 비로소 기다림은 우리에게 답을 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오랜만이예요.”
유림이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유림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그동안 그녀가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다. 한동안 일을 핑계 삼아 의식적으로 그녀에 관한 일은 무의식의 언저리 어딘가에 던져 넣은 채 잊어버리려 했다. 현관에서 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왼손엔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 알루미늄 목발 하나가 들려 있다. 아이의 한쪽 다리는 완전히 신경이 끊어져 버려서 더 이상 다리 구실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는 밤마다 잘린 다리가 간지럽다면서 엄마에게 잘린 부위를 긁어달라고 했다. 사지 절단 환자들이 흔히 겪는 환상통이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유림이는 일주일 후에 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독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을 그녀가 떠난 자리를 무심히 바라보며...
“보고 싶었다.”
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한참을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주 짧게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었다.”
잠시 후...
“축하합니다. 이번 교육장 지원 사업에 귀 협회가 선정되셨습니다.”
유림이가 잠시 널어두었다가 거두어간 협회의 화사함은 낡은 교육실을 허무는 인부들의 망치와 대패질 소리 그리고 새로 들여온 나무며 마감재로 채워지는 중이다.
<끝>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공간적 배경 : 장애인 정보화 협회 교육장
■ 시간적 배경 : 여름
■ 등장인물
서진하 : 장애인 정보화 협회 사무국장
김유림 : 협회 회원
김미애 : 협회 간사
윤여경 : 협회 회원, 뇌성마비 2급
김형태 : 서진하 친구, 경매사
이선호 : 협회 회원
송대리 : 교육장 후원사 담당자
협회 회장님
영어 강사
컴퓨터 강사
** 당선 소감 **
찍찍거리며 콧물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 이마의 불덩어리 같은 신열과 더불어 어김없이 흘러내리던 하얗고 맑은 콧물. 서걱거리는 흰 눈을 종일 밟아대면 어느새 감기가 달아날 거라던 짓궂은 동네 여자 아이의 말을 믿고 종일 눈밭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다음날 엄마 등에 업혀 병원으로 내 달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서른이 된 어느 날 밤 보일러 빵빵 틀어놓고 닫힌 창문 틈새까지 꽉꽉 틀어막고서 숨이 막히도록 두터운 이불 오지게 뒤집어쓴 채 갑자기 그 유년 시절이 떠 오른 이유는 뭘까? 서걱거리는 눈도, 등에 업고 병원에 데려갈 어머니도 곁에 없었지만 휴지 한통을 다 써버릴 만큼 어릴 적의 그 하얗고 맑은 콧물은 변함없이 흘러내렸다. 약에 취해 잠들기 전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전화하셨다는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쌀쌀한 초겨울 하루 저녁을 그렇게 흘러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약에 취해 잠든 다음날 며칠 전에 신인 문학상에 응모했던 글이 본심에 올랐다는 김순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후 당선 확정 소식을 접하고 나서 무작정 가방을 들춰 메고 예전에 종종 오르곤 하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약사사, 남문을 거쳐 땅거미가 짙게 깔릴 무렵 수어장대에 서서 바라본 한강의 전경이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 위원과 스토리 문학에게 감사드리며 처음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한비 동인 송순애 씨, 정리되지 않던 나의 문학적 틀 거리를 밤새워 가며 잡아주시던 방정기 형님에게도 감사드린다. 아직 아들의 당선 소식을 모르고 계실 어머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병상 생활에 지쳐 있던 동생이 환우들에게 작은 형은 작가(?)라고 자랑했다던 말에 이제는 다소나마 진실을 담을 수 있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