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여자

제 5화 : 줄행랑

by 김인철

[여자]


아침 일곱 시쯤 일어났다. 이상하게 술만 먹으면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근데 어젯밤 기억이 하나도 없다. 어째 쪼까 불안했다. 속도 무지 쓰렸다. 주방에서 김치 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친구한테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대충 들었다.


“야 이년아, 도대체 어제 술을 얼마나 퍼 마신 거야.”


“왜? 어제 무슨 일 있었는데... .”


“새벽 두 시에 혁이 오빠가 낑낑대며 널 업고 왔어 이것아. 게다가 바지에는 오바이트까지 해 놓고, 얼마나 쏟아부었던지 바지가 흠뻑 젖었더라. 그거 빠는데 아휴 냄새나서 죽는 줄 알았어, 이년아.”


어렴풋이 하나둘씩 기억이 떠올랐다.


“술, 지퍼, 팬티, 남자, 가로수.... 뜨아악~ .”


거실에 나뒹그라져 자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밥 먹고 가라는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잽싸게 도망 나왔다. 아파트 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미친년, 안에 누가 있다고. 언제부터인가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 벨을 누르는 버릇이 생겼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부엌 정갈한 식탁, 화사한 색조로 체리 향이 가득한 화장실, 달랑 화장대와 침대 하나뿐이지만 세련미와 우아함이 넘치는 침실.


“내 방이 언제 이렇게 깨끗했었지?”


엄마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혹, 남자를 데려 올지도 모른다는 가당치도 않은 희망에 부풀어 계셨겠지. 냉장고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이년아! 여기가 돼지우리지 사람 사는 곳이냐! 좀 치우고 살어!”


“쩝.” ㅎㅎㅎ


그래도 그렇지 정말 너무한다. 내가 평소에 좀 지저분하게 살긴 하지만 돼지우리라니, 누가 들으면 진짠지 알겠네.



[백수]


아침을 먹으라는 친구 놈의 성화에 잠이 깼다. 우~ 속이 쓰렸다. 눈을 비비면서 흘끗 작은 방을 봤는데 여자가 안 보인다. 친구한테 물어보니 새벽 일찍 일어나서 갔단다. 하긴 어제 그 난리를 펴대었으니 창피할 만도 할 거다. 제수씨가 끓여준 김치찌개로 쓰린 속을 대강 추스르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노란 국물에 범벅이 된 바지는 어느새 재수 씨가 빨아서 다려 놓았다. 친구 놈이 부러웠다. 어젯밤에 비가 왔던지 거리가 축축했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터벅터벅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새벽 공기가 상쾌했다.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거리를 걸어 보기도 정말 오랜만이다.


“나도 한 때는 아침 형 인간이었는데.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외국어 학원에서 캐나다인 영어 강사랑 잔뜩 혀 꼬부러 트려 가며 솰라~솰라~ 하며 농담 따먹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러고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버스에 올라타면 귀에다 이어폰 끼고서 방금 전에 배운 영어문장 열심히 외우고 그랬었는데... 그럴 때면 뭔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속에서 올라왔었... .”


“쏴아악~ ”


"이런 우라질, 얌마, 너 거기 안서~"


지나가던 택시가 물을 흩뿌리고 지나가버려 제수씨가 힘들게 빨아준 바지가 다 젖어 버렸다. 또 외박했다고 수도꼭지에 호스 연결시켜서 다 젖어 버린 바지에 물 뿌려 댈 울 엄마 생각하니 끔찍했지만 할 수 없이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졸리운듯 두 눈을 감고 넙데데한 귀를 팔락 거리며 똥파리를 쫓고 있던 똥개 자식이 멀뚱하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귀찮다는 듯이 뒤로 돌아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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