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여자

제 6 화 : 두 번째 만남

by 김인철

[여자]


오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술 안 마신다. 친구 년이 올 사람 별로 없다고 사정사정해서 오긴 했는데 솔직히 그 남자도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다행히 그 남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쫌 서운하다. 피로연 하면서 한 번씩 봐서 그런지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근데 아까부터 웬 늙수그레한 놈팡이가 옆에 앉아서 계속 꼴 갑을 떤다. 머리는 벗어지고 이마에 주름살 파인걸 보니 한 40 정도 된 거 같은데 신랑 친구란다. 모! 나도 인물이랑 나이 따질 형편은 아니지만 아직 까진 인생 막 나가고 싶진 않다. 근데 이 남자 술 좀 들어가더니 은근슬쩍 어깨랑 손이랑 왔다 갔다 한다.


이 자식이 죽을라고! 내 친구 얼굴 봐서 참는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미안, 미안, 내가 좀 많이 늦었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 남자였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긴장한 탓인지 입이 바짝 마르고 침은 꼴딱 꼴딱 넘어갔다. 어떻게 하지? 에라이, 그냥 모른 척 하자!


"실례합니다. 앉아도 될까요?"


"아, 네에"


이 남자 바로 내 앞에 앉는다. 나를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어 있는 컵에다 맥주를 따라 준다. 근데 이 남자 오다가 누구랑 싸웠던지 코에 대문짝만 한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풋, 웃겼다.


[백수]


택시가 앞지르기를 시도하던 오토바이랑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코피가 났다. 뭐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니지만 혹시나 싶어서 병원에서 치료받으러 갔다. 하필이면 코에 반창고를 붙이다니. 시간도 늦고 몰골도 우습고 해서 그냥 집으로 갈려는데 친구 놈이 왜 안 오냐고 계속 전화질이다. 제수씨가 문을 열어주는데 상황을 보니 판이 거의 끝나는 분위기다. 모두들 적당히 술에 취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바로 그 순간 노란 국물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은 멀쩡해 보인다. 옆에 가서 앉았다. 별로 앉고 싶지 않았지만 자리가 없었다. 술잔이 비어있다. 지난번의 악몽이 떠올랐다. 어제도 노란 국물이 온 방안에 차고 넘쳐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술을 따르면서 또 무슨 행패를 부릴까 봐 쪼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 좀 귀엽기도 했다. 근데 이 여자 마치 나를 처음 본다는 듯이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넙죽넙죽 잘 받아 마신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할 줄 알았는데. 완전 얼굴에 철판 깔았다. 아직 밥도 다 먹지 않았는데 노래방엘 간단다.


“우라질, 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


나중에 집에 가서 먹을라고 이것저것 챙겼다. 여자가 가자마자 마이크를 잡더니 한 곡조 먼저 뽑는다. 자우림의 하하하 쏭!


“우와~ 이 노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우라질 씹혔다.


“라라라라 라라라, 안녕, 안녕, 안녕히~”


마이크를 잡고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옆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니 제법 괜찮았다. 춤도 그만하면 꽤 잘 추는 편이었다. 푸허헐, 저런 술주정뱅이를 상대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지만 노래는 꽤 잘 부른다. 나도 질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며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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