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 약속
[여자]
오늘은 토요일이다. 며칠 전부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혼자서 통원 치료를 하러 온다. 처음엔 어떤 아주머니가 데려왔었는데 다음부턴 혼자 오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강아지다. 아니 똑똑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이 제비 놈은 전화번호 따가더니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도 연락 한 번 없다. 오늘따라 날씨는 무지하게 화창했다.
“아, 이런 날 남자 친구랑 청평 호수로 드라이브나 다녀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놀이공원이라도 가서 애들처럼 바이킹이든 독수리 요새든 신나게 타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무섭다고 엄살 부리면서 남자 품에 꼭 안겨보고 싶기도 한데. 돌아오는 길엔 목현리 오리 고기 집에 들러서 각종 야채 넣고 고추장으로 양념한 오리고기에다 쐬주 한잔했으면 딱 좋겠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쌈빡한 차라도 한 대 뽑을 걸 그랬다. 고생 고생해서 따놓은 운전면허는 벌써 몇 년째 장롱 속에 쳐 박아 놓고 있으니 첨부터 다시 연습해야 한다. 그렇다고 친구한테 전화하기도 그렇다. 만나 봐야 시부모 흉보거나 남편이랑 한바탕 한 이야기 아니면 유치원에 들어간 딸내미 이야기나 늘어놓겠지.
“야!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라, 그게 속 편해.”
“씨발 것들”
지네들은 할 거 다 해 보고 나보곤 하지 말란다. 혼자서 영화나 볼까 하고 인터넷으로 막 표 예약할라 하는데
“드르륵... 드르륵.”
그 남자 아니 그 제비 자식이었다!
[백수]
010-1004-82**. 며칠 전 택시에서 받은 여자의 전화번호다. 그날도 터벅터벅 탄천을 걸었더니 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그날따라 밤하늘의 별들이 참 많고 빛났다. 뭔진 모르지만 막 기분이 엄청 들뜨고 행복했다. 벌써 일주일째 뽀시락 뽀시락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근데 이 여자 번호 하곤 참. 지가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되는 줄 아는....맞아 맞아 천사야. 천사. 그건 인정. 쪼옴 많이 이쁘거덩~. 키도 크고, 바스트 웨스트 모두 엄청 착하거덩. 근데 술버릇은 아우 증말. 전화를 할까...말까...할까....말까... 막상 만나자고 했는데 '누구세요?' 하면 어쩌지. 또 나를 안다고 해도 '싫은데요' 하면 어쩌지. 그럼 나 엉엉 울어버릴까. 아니면 접시물에 코 박고 팍! 숨 쉬지 말아 버려. 참~ 번호 하나 받아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나! 엄청 소심 대마왕. 일할 땐 추진력 엄청 불도저 같고 안 그랬는데ㅠ.ㅠ 아우 노란 국물 만나고는 싶은데, 미치겠다. 왜냐고? 나 백수잖아. 돈도 없잖아. 글타고 번듯한 직장도 없잖아,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하고 있으면 나! 이렇게 고민하지 않겠지. 그러고 보면 내 동생이지만 송이는 참 대단하단 말이야. 1학년부터 시작한 수학 학원 보조강사를 무려 삼 년씩이나 하다니. 이제는 웬만한 월급쟁이보다도 수입이 더 좋단다. 아우 기집에, 마구마구 부러워라. 그래 결심했어. 까짓 거 거절당하면 어때. 다신 안 보면 되는 거지. 그냥 내 한 벌 밖에 없는 바지에 노란 국물을 토한 술주정뱅이 여자로만 기억하는 거야. 그리고 싹 잊어버리는 거야. 아웅. 그래도. 할까.... 말까...할까....하자....하자...아냐 안 할래.
"오빠...또 내지갑 손댔....야!"
이크 깜딱이야. 헐. 통화 버튼을 눌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