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화 : 호프집에서)
[백수]
맥주잔에 술을 따라 주는데 이 여자 또 무슨 사고 칠 것 같다. 맥주잔을 받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여자 얼굴이 벌건게 눈을 보니, 아무래도 그 야실 야실한 입술에서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시속 400km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발그레하니 볼에 홍조를 띠는데 막 볼에다 뽀뽀해 주고 싶다.
“걍~ 해 버릴까?”
술기운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사귀던 애인, 취미, 가고 싶은 곳, 졸업여행 게다가 지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 이야기까지, 근데 딱 한 가지 말 못한 게 있다. 백수라는 것, 여자도 내가 뭐하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갑자기 여자가 싱긋 웃더니 오빠라고 부른 댄다. 쑥스러웠다. 주저주저 했더니 ‘싫어요?’ 하고 묻는다.
아니 모 싫은 건 아니지만.
“삐졌나?”
밤기운이 부드럽고 시원했다. 도시의 불빛도 화사했고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녀를 집 근처까지 바래다 준 뒤 만원 버스에 몸을 싫었다. 알코올의 알싸함과 그녀와 함께 거닐 때 은은히 묻어나던 샤넬 넘버 나인 (이거 맞나?) 향수에 취해서 황홀해하고 있는데 ‘삐리링~’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녀였다!
[옵빠, 오늘 너무 즐거웠구요.]
[담부턴 말 놓으세요. 그럼 안뇽.]
[옵빠]*^^*
‘흐으윽~아악~악’ 나도 모르게 온 몸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꺼어억~ 트림도 나왔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넘쳐 나는 감동을 억제했다. 옆에서 깜빡깜빡 졸고 있던 아가씨가 오바이트를 하는 줄 알고 기겁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여자]
술을 따라 주는 남자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다행이었다. 놈도 수전증이 있나 보다. 실은 얼마 전부터 나도 술만 마실라고 하면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단발성 기억상실에 수전증까지 흑.흑.흑 영락없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렇지만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맥주의 알싸한 맛은 정말 일품이다. 내리 500cc 다섯 잔을 마셨더니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게 얼마 만에 찾아온 만남인데... .”
근데 이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름 말고는 이 남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뭐하냐고 물어보기도 좀 그랬다.
“몇 살 이에요?”
“서른하나요.”
“헉~ 나보다 어리잖아. 그것도 세 살이나.”
자식 보기엔 무지하니 성숙해 보이더니 왜 이렇게 어리담. 하긴 모 요즘엔 연상 연하 커플이 유행이라잖아. 근데 이 남자 왈 자기는 연상은 별로란다.
“스물아홉이에요... ㅠ.ㅠ.”
내가 미쳤지, 미쳤지,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짓말을 해 버렸담. 에궁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