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여자

by 김인철

(제12화 : 예비군 훈련 2 )


[백수]


아구. 힘들어. 야탑역 예비군 훈련장. 더럽게 덥다. 오늘은 예비군 훈련 마지막 날이다. 이번엔 대타 아니고 진짜다. 지난주에 대타 뛴 것 조교가 눈치챈 것 같지만 상관없다. 설마 지가 고발이야 하겠어. 다 그런 거지. 내가 지금은 쓰디쓴 인생의 바닥을 닦고 있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병장이다. 내년이면 이 지긋지긋한 예비군 훈련도 끝이 난다. 동사무소 애들한테 훈련 안 나오면 고발하겠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협박도 더 이상은 들을 일이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쩝~ 이제 남자로서의 생명이 다 끝나는가.”


오전 교육을 마치면 점심을 먹는다. 연병장에 일렬로 사총을 시키자마자 야비군 아저씨들 득달같이 도시락 파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 사람들은 느긋하게 가방을 들춰 메고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간다. 몇 개 남지 않은 삼천 원짜리 도시락을 간신히 구입한 후 근처 풀숲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우적우적 입에다 쑤셔 넣고 있는데 바로 옆에 웬 남자가 앉는다. 잠시 후 보온 통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맛깔스러운 반찬이 담긴 통을 연다. 그 옆엔 말간 된장국이 통에 가득 담긴 채 ‘목메면 날 마시세요.’ 하며 살포시 자빠져 있다. 마구 마구 부럽다. 그때 ‘삐리링’ 남자의 핸드폰이 울린다.


“국?”


“응. 정말 맛있어. 그냥 도시락 사 먹어도 되는데... 그래 나도 사랑해."


"....."


"응. 사람들 있는데. 알았어."


남자가 멋쩍은지 나를 슬쩍 흘겨본다.


"자기야. 사랑해. 사랑해. 우쭈쭈 우쭈쭈. 이제 됐지? 그래 좀 있다 봐."


“아우, 저것들을 그냥 콱!”


삐리링. 삐리링.


마침 나한테도 문자가 왔다. 그녀였다.


“오빠, 더운 날씨에 훈련받느라 힘들죠? 내일은 제가 도시락 싸 드릴게요. 뭐 좋아해요?”


지랄. 삽질하고 자빠졌네. 참 빨리도 연락한다.


[여자]


제비놈, 지금 예비군 훈련 중이란다. 자식, 딴에는 지도 남자라고 군대는 졸업했나 보다. 아니 제대라고 하던가. 보기에는 백묵가루처럼 하얀 얼굴에 학교 다닐 때도 맨 날 친구들 가방 들어주고 동네 아이들한테는 얻어터졌을 것만 같은 비실비실한 약골인데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니 쫌 대견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남자들이 받는다는 예비군 훈련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얼굴에 이상한 것 잔뜩 칠한 채 모자에는 들풀 같은 거 꽂아가지고 막 이리저리 뒹구는 걸까? 어쩌다 군대 다녀온 동창 놈들을 만나면 굉장히 살벌한 이야기밖에 하질 않는다. 무슨 치약 뚜껑 위에다 머리를 박게 한다던가, 바다 한가운데다 빠트려 놓고 혼자서 살아올 때까지 내 버려둔다던가 한단다.


“아무리 그럴까?.”


오빠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 때는 에무 십육인가 뭔가 하는 총으로 절벽에다 쏘기도 하고 그 소리는 엄청 크다던데. 갑자기 제비가 멋있어 보였다.


“가만있자, 훈련이 언제까지라고 했었지?”


오빠들 예비군 훈련받는다고 도시락 싸 본 경험도 풍부하고 내일은 모처럼 솜씨 좀 발휘해서 그 제비한테 점수 좀 따야겠다. 예비군 훈련 언제 까지냐고 문자를 보냈다.


쩝...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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