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아르바이트 )
[백수]
오늘은 월요일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날이다. 다른 사람은 일터로 출근하는데 나는 지금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가고 있다. 며칠 전에 영어 과외 부탁이 들어와서 영어 책 좀 보고 있는 중이다. 이래 봬도 토익 900점 토플 550점, 웬만한 곳에선 통하는 준 네이티브 스피커였다.
“내가 영어는 좀 돼지.”
친구 놈이 날 소개했단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두 번 한 달에 팔십만 원이면 제법 괜찮은 수입이었다. 무슨 타워팰리슨지 뭔지 하는 고급 아파트였는데 들어가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나 아방궁이 따로 없었다. 근데 이런 아방궁에 사람들은 없고 웬 포동포동한 돼지들만 득실댔다. 아빠 엄마, 자식들 할 것 없이 죄다 둥글둥글하니 토실토실했다.
“쯧쯧, 운동 좀 할 것이지.”
내년이면 고등학교 올라가는 여자아이였다. 그나마 얘가 제일 날씬했다.
“자식, 말할 때 저 볼 살 떨리는 것 좀 봐.”
근데 백만 원짜리 과외를 삼 년도 넘게 했다는 얘가 무슨 알파벳도 다 못 외우고 있냐. 얘 가르치던 선생이 누군지는 완전 날로 먹었나 보다. 첫날부터 머리를 쥐어박을 수도 없는 일이고. 에궁, 앞으로 가르칠 일이 막막했다.
“야, A부터 Z까지 노트에 이백 번만 써.”
“백번만 쓰면 안... .”
“콱! 이만 번 쓸래!”
“드르륵... .”
노란 국물이었다. 문자가 두통이나 와 있었다. 그냥 심심해서 했단다. 지금 뭐 하냐고 묻는다.
“응, 수업 중이야!”
[여자]
급하게 정관 수술을 해야 할 고양이가 있어서 오전부터 정신이 없다. 이런 수술을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하자니 참 거시기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내시를 만드는 거였다. 밤만 되면 도둑고양이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다니는 바람에 시에서 대대적으로 고양이를 잡아 거세를 시킨 다음 다시 풀어주고 있었고 나는 고양이들을 수술하는 지정 수의사였다. 오후가 되자 조금 짬이 났다.
“지금 제비는 뭘 할까?”
이 자식은 도대체 내가 전화를 안 하면 생전 연락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 왜 그리 비밀이 많은 건지 뭘 물어봐도 통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질 않는다. 전화기를 쫌, 아니 한참을 노려보다가 문자를 보냈다.
“오빠, 뭐해요?”
“......”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나도 대답이 없다.
“오빠, 지금 바빠요?”
“......”
다시 십 분이 흘렀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었다. 이 자식 한참 만에 받는다.
야, 이 자식아 전화 좀 재깍재깍 받아라.라고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놈이 지금은 수업 중이란다. 얼른 끊었다. 무슨 수업? 학교 선생님, 유능한 대학 강사, 아니면 젊은 유학파 교수? 내가 머 그렇게 속물은 아니지만 그놈이 쫌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