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백장미파 1)
[백수]
삐리링....삐리링....
최대한 편한 자세로 책상에 앉아서 미생[다음 웹툰] 48수를 보고 있었다. 나! 요즘 완전 '미생' 폐인이다. 열정 넘치던 신입사원 시절 생각도 나구. 자꾸만 안쪽으로 파고드는 특 A급 코딱지를 검지 손가락으로 후벼 파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밤 열두 시가 넘었다. 언제부턴가 벨소리만 울리면 막 심장이 두근거리고 터질 것만 같았다. 혹시 나! 심장 판막증. 불치병 뭐 그런 거. 아직 실비 보험도 없는데. 우캬캬캬, 예상대로 그녀다. 파고든 코딱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성우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여보세요."
"어머, 어머, 웬일이니, 남자 목소리야. 얘들아 진짜 맞나 봐!"
"어머...정말!"
"이거엇들이. 니들 속구우만 살았어!"
"어머나....수아아 너 정말이구나. 축하해!"
쫌 이상했다. 전화번호는 맞는데 목소리는 다른 여자 목소리다. 거기다 수화기 너머엔 다른 여자들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수아씨...핸드폰 아닌가...."
"어머 어머....난 몰라"
"여....여보세요."
"옵빠~! 나야. 수아. 이수와아~.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어...그....그게."
보아하니 이 여자 또 술 퍼먹고 꽐라 된 모양이다. 정신없고 산만한 여자들은 그녀의 친구들인 게 분명했다.
"옵빠아, 지금 뭐 하~고 있었냐아니까.....얼른 대답해죠! 앙!"
헐~ 이 여자 또 삼단 쓰리 콤보로 변신 중이다.
"응. 내일 수업할 자료 만들고 있었어?"
"수업...무슨 수어업인데에...앙!"
"응... 토플 수업."
수화기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어머...니 남자 친구 학교 선생이니? 아님 대학 교수?"
"꾸래에 이뇬들아 내~ 남친 써울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거든"
뭐...내가 서울대....영문과 교수....이 여자가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ㅠ.ㅠ
[여자]
오늘은 백장미파 오인조 모임이다. 지난봄에 만나고 딱 일 년 만이다. 백장미파! 여고시절부터 죽고 못살던 단짝 친구들이다. 이름만 거창했지 모 우리가 학교 일진이라거나 후배들 앞에서 침 탁탁 뱉어 가면서 깔짝, 깔짝! 면도날을 씹은 건 아니다다. 가끔...깻잎 머리에다가 스모키 화장에 미니스커트 쌈 싸 먹을 교복 치맛단을 줄이기는 했었지만. CC였던 둘은 군 제대하자 결혼해서 지금은 유치원 학부모가 되어있었고 직업군인인 한 명은 내년에 결혼 예정이고 마지막 한 명은 나처럼 혼자인데 문제는 돌싱이라는 것. 즉, 나만 완전한 솔로라는 것! 흑흑흑. 근데 이것들이 초장부터 염장을 지른다.
"수아야. 넌 아직도 소식 없니. 얘 너 정도 미모에 몸매에 동물 병원 수의사면...."
"쟨...너무 눈이 높아!"
"아니야, 것보단"
"너....혹시...그거 아니니?"
"그거라니?"
"있잖아. 커밍아웃."
"이것들이 증말."
"나! 남친 있거든. 그것도 대학 교수거든"
폭탄주 탓인지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저...정말이야? 지난번에도 의대 다닌다던 사촌오빠 니 남친으로 사기 쳤으면서."
"진짜면 어쩔래. 확인해 보면 되잖아."
옴마야. 일났다. 일났어. 정신은 점점 말짱해졌다. 내 혀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그래 전화만 안 받으면 되지 뭐. 제비야 제발 자고 있어라.
"여보세요."
이 자식. 잠이나 쳐 자지. 아웅, 받아 버렸다.
"수아야! 드디어 쏠로 탈출 했구나. 축하해. 오늘은 니가 쏴. 담엔 꼭 남친 데려오구."
"나 이제 쏠로...니들 다아 죽었..."
나! 정신줄 놓아 버렸다. 딸꾹!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