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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Apr 11. 2022

봄날의 까대기 한판

전직 사회복지사의 물류창고 알바 체험기


사내가 오늘 하루동안 일할 물류 창고는 도로에 인접했다. 차들이 씽씽 무서운 속도를 내며 도로를 내달린다. 오전 8시 30분이다. 고요하던 물류 창고가 분주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일사불란하지만 까대기가 처음인 사내는 어리바리하다.1번 화물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옆엔 나무 파렛트 위에 가득 쌓인 상자들이 보인다. 지게차 한대가 포크를 살짝 들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집어넣더니 박스가 쌓인 팔레트를 번쩍 들어 올린다. 위이잉, 위이잉. 후진을 하자 붉은 경고등이 울린다. 비켜, 비키라고. 정신 안차려.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가 깨지거나 팔이 부러진다. 방금 전에도 어리바리한 표정의 사내 귀속으로 날카로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너, 오늘 처음이야? 다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 


지게차 세대가 창고 바닥을, 엘리베이터와 게이트를 분주하게 오간다. 검정 작업복을 입은 사내들은 게이트 앞에서 2인 1조로 대기 중이다. 1번 물류창고의 상하차 게이트는 5개다. 게이트마다 화물용 트럭과 탑차가 대기 중이다. 지게차 한대가 1번 게이트 앞에 파렛트를 내려놓자. 대기중이던 작업자들은 일사불란하다. 한 명은 탑차 안으로 들어가고 한 명은 팔레트 위의 박스를 탑차 속으로 휙휙 던진다. 이마가 벗겨지고 풍채 좋은 화물 기사가 송장을 보며 상자 카운팅이 맞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다.  



창고에서 보이는 산야는 봄빛으로 가득하다. 여기는 치열하다. 어리바리한 사내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박스 수량 체크했어. 송장은? 거친 기계음과 날것의 언어들이 1번과 5번 게이트 사이를 먼지처럼 부유한다. 보소, 거기요. 이쪽으로 오소. 근육질의 사내가 어리바리한 사내를 부른다. 3번 게이트다. 11톤 화물트럭에 커다란 김이 든 상자로 가득하다. 까대기 경력이 18년이라는 사내는 행동에 거침이 없다. 팍팍, 그렇게 하면 안돼요. 여기를 이렇게 팍팍 쳐요. 그의 어깨는 다부지고 팔은 말 근육이다. 어리바리한 사내가 봐도 부럽다. 사내는 빈 파렛트를 한 손으로 번쩍 들더니 창고 바닥 위로 내던진다. 사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흥건하다. 어리바리한 사내는 그와 한조가 되었다. 이백 더하기 이백십오. 사백 열다섯 개. 오케이. 그는 냉동된 생선 박스를 쌓는 법을 사내에게 친절히 알려줬다. 


"야, 너, 이리 와 봐."

"씨팔, 뭐 하고 있어. 한참 바빠 죽겠는데."

"까대기 처음이야? 스티커는 왜 때고 그래, 짜증나게."


사내는 다시 2번게이트에 섰다. 이번엔 꽁꽁 얼린 대개가 든 상자다. 이십키로는 족히 나간다. 사내보다 한 두 살 많을 것 같은 사내는 반말을 찍찍 내뱉는다. 어리바리한 사내는 갑작스러운 사내의 욕설과 비난에 당황했지만 집에 가서야 그 말을 상기한다. 지금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까대기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내의 이마에서 땀은 비 오듯 흐른다. 물을 세 컵이나 마셔도 갈증이 인다. 


"몇 살이에요. 오늘 처음이죠? 어려 보이네. 원래 이 바닥이 그러니, 험한 말 들어도 이해해요."


오전 타임 시작할 때쯤 서글서글한 사내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는 사내보다 여섯 살 많다.  오전 까대기 세 시간, 점심시간. 은빛 식판이 크고 깊다. 사내는 밥을 고봉으로 펐다. 흰쌀밥, 두부된장국, 무우 장아찌, 붉은 기름이 가득한 제육볶음, 아삭한 김치. 고된 노동 후의 점심은 꿀맛이다. 삼십 분간의 휴식. 모두들 담배를 핀다. 사내는 담배 한 모금 대신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마신다. 사내들의 한숨 뒤로 내뿜는 담배연기가 허공속에서 표표히 사라진다. 


y


삼십분정도 까대기를 마치면 오분 남짓 휴식이다. 다른 게이트가 바쁘면 바로 투입이다. 전신의 근육을 쓴 사내는 호흡이 거칠고 기진맥진이다. 담배를 피지 않는 사내는 휴게실에서 숨을 돌린다. 사내가 마주한 벽면엔 빛바랜 안전포스터가 붙어있고 그 옆에 사각의 정체 모를 금속케이스엔 일렬로 늘어선 붉은 점멸신호가 깜빡거린다. 정수기 옆에 종이컵 두개가 엎어져있다. 사내의 머리위 붉은 히터에는 사내들의 거친 숨결로 젖은 마스크가 위험스레 걸려있다. 


1번, 2번, 3번. 1번 물류 창고는 오후 타임도 정신없이 돌아간다. 다시 지게차가 돌고, 붉은 경고등이 울리고. 쿵! 화물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위이잉. 위이잉. 거친소음, 거친 언어, 정신없지만 일사불란한 풍경이다. 사내는 혼잡한 상황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왼쪽 손목이 화끈거리고 어깨가 바스러지고 목이 돌아가고 허리를 삐끗했다. 상자에 찍힌 허벅지는 얼얼하다. 야! 조심해. 거기 비켜. 비키라고. 이번엔 4번 게이트다. 오전에 반말을 지르던 사내다. 까칠하지만 탑차에 박스를 쌓는 솜씨가 일품이다. 아, 이런. 젠장. 너 까대기 처음이야. 어리바리한 사내가 놓친 상자에서 잔멸치가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진다. 괜찮아, 괜찮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박스는 이렇게 박아. 이번 상자는 던지지 말고.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어리바리한 사내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다. 까대기 첫날이 끝났다. 사내들의 거친 언어와 몸짓, 탁한 담배 연기가 물처럼 흐르고 황혼 속으로 스며든다. 


"반장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도 까대기 하실 거면 문자 남겨 주세요."


*까대기 : 물류창고나 부두에서 짐을 올리거나 내리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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