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빨간 양말과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
초등학교 삼 학년이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 나무 막대기를 하나 주웠다. 허리를 굽혀 텅 빈 운동장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간 나는 꽤 오래 서있었다. 그날 내가 그린 그 동그라미를 여전히 기억한다. 오 학년이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개그 프로그램(아마도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한 코미디언이 심청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심청이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때 나는 꽤나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그날 그 개그 프로를 보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의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받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 실존인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최초의 동심 파괴는 굴뚝을 타고 내려온 산타클로스의 양말이 아니라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효녀 심청이었다. 홍길동도, 콩쥐팥쥐도, 장화와 홍련도 모두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동심을 파괴시킨 것은, 그것은 사건이라기보다는 단어였다. 공중정원. 공중화장실. 어떻게 저 높은 하늘(공중)에 정원과 화장실이 떠 있을 수가 있지. 혼자서 생각했다. 그것은 공중 '하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일반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공중이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를 이해했을 때, 나의 동심은 파괴되고 사라졌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참 많았다. 그 중의적인 문장과 단어의 뜻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을 때 나의 동심은 파괴되고 사라졌다. 그것은 사춘기가 되고 턱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기 시작하고 무릎이 아프고 젖꼭지가 아파오는 몸의 이차 성징이 나타나기 이전의 나에게 꽤나 무겁고 진지한 고뇌였다.
아홉 살 인생에서 열네 살 인생을 사는 동안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었다. 어린이날은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운동장이 아니면 언제나 신화나 전설이었다. 마징가나 태권브이 같은 선물도, 놀이동산도, 범퍼카도, 솜사탕도 그림의 떡이었다. 그것들은 한 번도 내 결핍을 채워 주지 않았다. 나의 사춘기는 여드름을 제외하면 외면보다는 내면에서 더 치열했다. 학교를 제외하면 길에서, 산에서, 골목에서 궁금한 것이 생겨도 물어보거나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터득하는 게 최선이었다.
우리 집엔 5학년까지,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었다. 우리 집엔 책이라곤 홍길동전과 세로로 쓰인 무협지 한 권이 전부였다. 홍길동전은 스무 번도 넘게 읽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협지도 마찬가지다. 방학이 되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세권 정도 빌릴 수 있었다. 그중 하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도시'다. 미래 사회 인간들은 강철도시라는 거대한 돔에서 생활한다. 인간들은 어둠이 내리면 돔을 벗어나 바깥을 나서기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로봇이 안내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동네 친구, 아니 후배 집에서 본 성인 비디오 '차라리 불덩이가 되리라',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차원의 동심 파괴였다. 그것은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남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상반신을 벗은 여인의 나신을 보며 풋풋함은 야릇함과 충만함으로 채워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러덩 뛰고, 어둠과 고요 속에서 뭔가 엄청난 죄를 지은 것 같은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5월, 어린이, 어버이, 그리고 스승의 날이다. 화목하고 축복으로 충만해야 할 가정의 달에 동심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뜬금없지만, 영원히 자라지 않는 피터팬이 아니라면 동심 파괴는 누구가 한번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내가 가정 쓸쓸해지는 달이기도 하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 여러 상황과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단어들이 있다. 나의 동심 파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