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색은 무슨 색일까?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지난주부터 학교별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을 일찍 마친 s가 오더니 좋은 생각이 있다며 시험기간인데도 밤새 고민했다던 아이디어를 죄다 풀어놓는다. 그동안 인문학 수업을 위해 수고해주신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마음은 예뻤지만 시험기간인데... 망쳤단다. 지난번처럼 성적 때문에 목 놓아 우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크레파스 속의 살색이 인권침해 논란이 되어 살구 색으로 바뀐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렇지만 현실의 살색은 여전히 한 가지 혹은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마지막 인문학 수업 주제는 '살색은 무슨 색일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햇살**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그동안 아이들 저녁 맛있게 대접해 주어서 감사하단다. 남편이 직접 친환경 농법으로 지었다는 쌀을 한 가마니 보내주시고 싶다며 택배를 받을 주소를 물었다. 몇 차례 사양하다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이틀 전 택배로 자루에 담긴 쌀을 받았다. 오늘은 햇살** 선생님이 보내주신 쌀로 밥을 지었다. 게다가 오늘은 집에서 직접 키운 닭이 낳았다며 계란 두 판을 직접 들고 오셨다. 알이 큼지막하니 먹음직스러웠다.


오늘 강의를 해주실 정** 교수님은 K대 '인류사회 재건 연구원' 교수님이시다. 선생님은 앞서 몇 차례 참관수업을 하셨다. 아이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해서인지 주제는 같았지만 수업 내용이 처음 워크숍을 했을 때의 계획과 조금 달랐다. 강의를 마친 후에는 그동안 진행했던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고 피자와 치킨으로 쫑파티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그동안 수업을 준비하셨던 선생님과 간단히 뒤풀이도 할 예정이다.


교수님은 수업 첫머리에 몇 가지 이미지를 펼쳐 보이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이미지들을 보고 연상되는 것들을 물어보셨다.


인물 1- 목사님, 변호사, 통역사, 넬슨 만델라, 일반인, 깡패, 래퍼, 실업자, 정치가, 군인이었다.

인물 2-연예인, 변호사, 의사, 군인, 세무사

인물 3-나치 혁명가 가게 아줌마, 정육점 주인, 주석, 쌀집 아저씨

인물 6-운동선수, 동네여자, 여행가, 주부, 영어 선생님


인물 1은 흑인 인권운동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다. 인물 2는 '리처드 스펙'이라는 인물로 유명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었으나 그는 희대의 연쇄 살인마였다. 백인이기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 같았다. 인물 3은 중국의 국가 주석을 지낸 '마오쩌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물 6은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이다. 이미지와 실제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세련된 이미지의 상징인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도 평범한 복장의 사진으로만 봐서는 동네 아줌마랑 차이가 없었다. 교수님은 상대적으로 아이들은 어른만큼의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오늘 수업 내용 중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호텐토트 비너스' 관한 이야기였다. 예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내용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박제시킬 수가 있을까? 그것도 학자들 사이에서 외모가 조금 특이하다고 해서 그가 인간인가 동물인가 하는 논쟁까지 붙었다니 보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녀는 결국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결론 내려졌고 시간이 흐른 뒤 유전학적으로 규명되고 나서야 완전한 인간임이 확인되었단다. 짧은 생애 동안 마치 애완동물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다. 26세가 될 무렵 성병에 걸려서 죽었고 사후에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박제가 된 후 박물관에서 사람들에게 전시된 후 대통령의 요청으로 200년이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7시가 조금 넘어서 강의를 마무리하고 퀴즈 형식으로 8차시까지의 수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행은 학벌 없는 사회 김** 선생님이 맡으셨다. 퀴즈를 맞힌 아이에겐 문화 상품권이 한 장씩 돌아갔다. 아이들은 생각 못한 선물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동안 수업을 해주셨던 교수님의 성함 등등 약 삼십 분간 질의와 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배달시킨 피자와 치킨이 오자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분위기가 오를수록 건물주인의 신경질적인 등장이 염려되었지만 '개밥의 효과'는 여전히 유효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속 시원하네요."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간단한 뒤풀이를 위해서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강의를 해주신 교수님도 실무를 맡으셨던 '학벌 없는 사회' 선생님들도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도 맥주잔을 부딪이며 조금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름 고민하면서 긴 호흡으로 달려온 시간들이 잘 마무리되었다. 학벌 없는 사회는 하반기 2 과정이 남았으니 우리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후련한 듯했다.


선생님의 강의 역량 혹은 스타일에 따라서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민망할 때도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인문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과정들이 진솔하게 나왔다. 잘 될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에도 끝까지 밀어붙인 ㅊ 선생님의 뚝심이 대단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근대의 역사는 백인들이 정한 역사였다. 동양의 '오리엔탈리즘' 또한 동양인의 시각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다. 이 부분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유럽 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서 ‘아시아만’의 ‘아프리카만’의 세계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 수업 주제인 살색은 무슨 색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듯 모든 인문학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는다.


검은 것은 언제나 흰 것에 압도당했다. 검은 달걀 껍데기 속에 흰 달걀이 들어 있음을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 그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하는 것,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믿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찌질이가 되지 않고 주인공이 되는 것, 살색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본 인문학 수업의 궁극의 목적이다. 수업을 마무리하는 지금 시점에서 이렇게 의도한 것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차후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해 봐야 한다. 살색은 무슨 색일까? 다음날 평가 질문지에 답을 적은 한 남자아이의 답이 인상적이다.


"살색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색이다."


2010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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