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토요일 아침이다. 대학로 소극장(스타시티)에서 연극을 볼 예정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창밖이 꽤나 어수선했다. 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빗발이 굵진 않았다. 놀. 토 수업을 해야 하는데. 수행평가 때문에 안 가겠다고 하던 놈들 열심히 설득해 놓았는데 지금 저렇게 속도 모르고 비가 온다. 핸드폰에는 문자가 두 통 와 있다.

"샘, 오늘 놀. 토 수업해요?"

"비 오는데 서울 가요?"

폭우가 쏟아져도 간다고 답해 줬다. m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섯 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가족들이 사촌 동생 때문에 어젯밤 모두 병문안 갔단다.

"동생 데리고 가도 돼요?"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안 된다고 했다. m은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S샘에게서 전화가 왔다. m이 울면서 전화했다고 자기가 잘 돌 볼 테니 데리고 가자고 한다. 12시가 되기 전에 푸른 학교에 도착했다. M샘이 먼저 오셔서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일찍 온 아이들은 인터넷을 하거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출발 전 모인 인원은 15명이다. 교사 포함 모두 19명이다. (m동생은 제외) 12시 30분 단대오거리에서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혜화역 3번 출구 스타시티. 막무가내들. 여유 있게 출발을 해서 그런지 혜화역엔 3시 전에 도착했다. 공연 시작 20분 전이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니 대학로 한쪽에선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월드컵 응원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조금 걸으니 스타시티가 보였다. 소극장 치고는 꽤 간지 났다. 함께 온 T가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하나씩 돌렸다. 태호. 자원봉사 샘인데 믿음직하다. 공연은 90분이었다. 코믹 호러. 등장인물은 딱 네 명이었다.

처녀 귀신 김옥분(옥빈), 사채업자 박정우, 퇴마사 나상출,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한 명은 1인 4역을 했다. 아이들은 처녀귀신이 우물을 부여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 일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이놈들 어제 만해도 그렇게 가기 싫다고 진상 부리더니 막상 공연을 보더니 오길 잘했단다. 그럴 줄 알았지만! 맨 앞에 앉은 k만 재미없어하며 소품인 팥을 열심히 주워 담았다. h가 m의 동생을 친딸처럼 데리고 다녔다.

"언니, 귀신이 왜 안 죽어? 귀신이 왜 안 죽어?"

m의 동생이 객석 뒤에서 수차례 물었다.

"얘 쫌 조용히 해라?"

처녀귀신도 신경이 쓰였는지 대사를 하다 말고 받아쳤다. 객석은 빵! 터졌다.

"너 껌 뱉어."

맨 앞에 앉아서 연신 깔깔거리던 b가 깜짝 놀랐다.

막무가내들 줄거리는 대강. 사채업자 박정우가 산골 폐가에 홀로 사는 처녀귀신 김옥분을 찾아서 대출금 1억을 갚으라고 하는데 저승사자 나상출, 그리고 1인 4역의 퇴마사와 이러쿵저러쿵 벌이는 일이다.


연극 관람을 하고 극장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삼겹살, 냉면 값을 따로 받았다. 4천 원이란다. 성남은 고기 시키면 냉면은 무료인데. 합이 이십만 원이 넘었다. 십오만 원 정도 예상했었는데. 그래도 잘 먹었으니 됐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서울답게 곳곳에서 외국인이 눈에 띈다. 근데 이 녀석들 겁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Where are you from? 까지는 좋은데 그다음부턴 통 진도를 못 나간다. 나를 끌고 간다. 이러저러 솰라 솰라. How tall are you? 키가 얼마예요? 201.

"세상에나, 언빌리버블. 오우! 잘 생겼어요."

짧은 프리토킹을 끝내고 잠실 행 지하철을 탔다. 여기저기 사람들 사이에 섞인 가운데 자리를 못 잡은 세 녀석이 노약자석에 앉았다. 약주를 좀 자신 듯 한 할아버지 한분이 노약자석에 앉은 아이들을 향해 뭐라 뭐라 하신다. 세 녀석들은 졸지에 열중 셔 자세로 서서 혼나고 있다. 대충 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이 할아버지 점점 흥분 모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얘들을 뒤쪽으로 보내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좀 약주가 과하셨나 보다.

"요즘 얘들은 학교에서 도덕도 안 배우나?"

"죄송합니다."

"당신 학교 선생 이슈?"

"네 죄송합니다. 주의시킬게요."

몇 번을 죄송하다고 했는데도 이 할아버지 막무가내다

"교육청에 전화 걸까? 인터넷에 글 올려."

객실 양쪽에선 무슨 일이 났나 싶은지 시선이 우리 쪽으로 몰렸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할아버지 음성은 더욱 카랑카랑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M샘이 다음 역에서 내리자고 하셨다. 뭐 한 두 번이었더냐. 이런 상황들이.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 버리자 지하철 안에 계신 술 취한 할아버지 멍한 표정이다.

"선생님. 우리가 뭘 잘 못했는데요?"

"아, 그 할아버지 이상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씩씩거렸다.

"왜 선생님은 가만히 듣고만 계셨어요?"

"왜 머라고 안 하신 거예요?"

"그럼 그 상황에서 선생님이 그 할아버지한테 막 뭐라고 하고 대들면 좋았겠니? 그 할아버지가 조금 오버를 하긴 했지만 너희들도 잘한 거 없잖아."

아이들은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일단은 안심이다. 갑자기 오늘 본 연극의 제목이 떠오른다. 대책 없이 막무가내인 배우들, 약주하신 지하철 할아버지, 연극 보고 삼겹살과 냉면 배불리 먹은 후 방방 떠다니는 아이들. 이들 중, 누가 진짜 막무가내들이었을까?


2010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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