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카피, 페이스트, 그리고 휴지통
며칠 전부터 사무실 컴퓨터가 말썽이다. 어제는 아예 먹통이 되어 버렸다. 오늘 공부방 나오자마자 A/S 신청했다. 증상을 확인 한 직원 왈, 자기도 별 수 없단다. 돈 주고 데이터 백업 회사에 문의하란다. 일순간에 모든 것이 삭제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면 '카피'와 '페이스트'도 불가능하다. 데이터 백업 회사를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 카피와 페이스트. 그리고 휴지통 외래 어식 표기법에 의미를 부여하기엔 뭔가 어설프다. 그렇지만 한번 이런 상황에 빠져 버리면 내 안의 다른 사고는 일순간 모두 멈춰 버린다. 다시 정의해 보자. 카피, 페이스트. 혹은 삭제하기. 그리고 휴지통. '카피'는 단순하다. '페이스트'도 단순하다. 그렇지만 복제할 대상은 단순하지 않다. 무턱대고 휴지통으로 삭제 하기는 더욱 어렵다. 모든 문제들이 단순히 '복사'하고 '붙이는' 것으로 해결되면 좋을까?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90퍼센트 개표가 끝난 선거처럼 말이다. 물론 99퍼센트에도 끝나지 않는 예외도 있긴 하다.
놀. 토 수업을 기획했다. 처음엔 '성문화 체험'을 하려고 했었는데 청소년 복지관, 센터마다 만원이다. 7월에나 가능하단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대학로, 소극장, 티켓.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막무가내들’ 연극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고딕체 글자의 테두리가 붉은 포스터도 꽤나 인상적이다. 귀신이다. 코믹 잔혹을 표방한 연극이다. 참 오랜만이다. 종례시간에 놀. 토 수업을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아니 무진장 시큰둥이다. 수행평가. 도서관, 교회, 엄마 심부름 등등 핑계도 다양했다. 평소에는 놀. 토 수업 안 하냐며 수업을 마치고도 10시까지 삐대다가 야참으로 라면까지 끓여 주고 나서야 집으로 가던 녀석들이다. 아! 이런 식의 배신감. 정말 오랜만이다.
"이번엔 엄마에게 전화해도 소용없어요. 왜냐면 난 절대로 안 갈 테니까."
"알았어. 오늘은 안 할게."
"도서관 가서, 수행평가해야 해요."
“네가?”
라는 말이 숨에서 멈춘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아! 선생님. 정말. 그러기예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카피'보다는 끈적끈적한 '페이스트'가 필요하다. 카피는 그저 복제, 그리고 클릭 한 두 번의 단순함이다. 생각 없는 단순함은 곧 원망으로 돌아온다. 그 단순함을 넘겨짚는 치밀함과 섬세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안 가겠다고 못 가겠다고 우겨대는 여학생들에게는 말이다. 이놈들, 두고 보라지. 나는 너희들의 수법을 너무나 잘 안다. 한두 번이었더냐? 부모님에게 전화 신공을 진정 몰랐더란 말이냐!
내 앞에다 무엇을 갖다 붙이든 어설픈 '카피' 보다는 떨어지지 않는 '페이스트'가 되어야 한다. 필요 없어진 것들도 무작정 버려서는 안 된다. 무엇이 되었든 함부로 '휴지통'이나 '삭제하기'는 곤란하다. 칸트나 헤겔식의 정. 반. 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페이소스'다. 사실! 나, 이 양반들 잘 모른다. 하지만 쓰레기. 이것은 희열이다. 기쁨이다. 불필요한 삭제는 한 번뿐이다. 특히 휴지통을 조심해야 한다. 그곳에서 마저 삭제를 누르고 나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한다. 근데 이번엔 이놈들이 정말로 안 가면 어쩌지? 이번엔 내가 삭제당하면 어쩌지.
2010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