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수 있는 용기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인문학 수업 세 번째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다, 수업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 빈자리가 많다. 아이들이 올 시간인데 여기저기서 못 온다는 전화만 온다.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를 비롯해 선생님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햇살****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은 정자동 푸른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도 수업을 들으러 올 예정이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많이 빠졌다. 내일이 연휴라서 일까? 항상 일찍 오던 아이들이 빠져 버리니 오늘따라 공부방이 텅 빈 것 같다. 새삼 신이 내려주신(?) 아이들의 소중함을 느낀다.


강의를 해주실 선생님이 일찍 오셨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지만 오늘 선생님은 특별히 더 기대가 됐다. 이명원 문학 평론가. 2004년 전태일 문학상에 응모한 소설 '깨어있는 시간'의 예심을 맡아 주셨다. 개인적으로 꼭 한번 뵙고 싶던 분이었다. 화면이나 사진에서 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M선생님 언니가 보내주신 순대가 상당히 맵다. 아이들은 맵다 면서도 잘 먹는다.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많이 남았다. M샘이 아이들 갈 때 조금씩 싸서 보내신단다. 그 마음이 고맙다. 이제는 달리 말을 안 해도 통한다.

며칠 전에 보낸 메일을 읽으셨던지 수업 시작 전에 몇회였는지를 물으셨다. 14회라고 말씀드렸더니 메일을 보시고 새삼 참 좁구나,라고 생각하셨단다. 최근에 발표한 글은 없는지 물으셨다. 리얼리스트 100에 보낸 단편이 퇴짜 맞았다고 했다.


시간이 됐다. 역시나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수업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자동 푸른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왔다. 그런대로 빈자리가 찼다. 오늘 강의 주제는 '배울 수 있는 용기'다. 지난주 강의와는 달리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메일과 전화로 수업을 받을 아이들이 중학생임을 말씀드렸지만 이 연령대는 처음이신 듯 강의 내용은 상당히 어려웠다.


아이들도 처음엔 집중하는 듯하더니 산만해졌다. 그중에서도 s와 d가 자꾸 분위기를 흩트렸다. 주의를 줘도 소용이 없다. 녀석들도 이 상황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이럴 때 녀석들의 뇌세포 활동은 가히 제갈량의 뺨을 때릴 정도다.


인문학 수업 시작한 뒤로 목요일만 되면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데 오늘은 더 그렇다. s와 d의 산만함이 점점 심해진다. 다른 선생님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급기야는 d가 춥다면서 선풍기를 끄라고 언성을 높인다. 모두의 시선이 d에게 집중되었다. 이 녀석들 두고 봐라! 이제 쉬는 시간은 내가 더 필요하다.


열기가 뜨겁다. 수업을 듣고 싶은데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갑자기 냉장고 속의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 아니 들어가고 싶다. 몰라 몰라 기린이라니. 열기 가득한 광장에서 나는 늪처럼 꺼진다. 일단은 솟아 보라고. 합쳐서 펭귄 열두 바구니니까. 모든 것을 담는 바구니는 편의점에 있다. 굳이 펭귄이 아니어도 나는 종종 편의점에 간다.

죽음에 관한 무엇, 가톨릭과 발음하기 어려운 신부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었는데 교사인 나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온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게 듣는데 유독 우리 아이들만 산만한 것 같다. 드디어 쉬는 시간이다. '디딤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셨다는 김**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우리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린다.


나도 스카우트 제의를 해볼까? 요즘 이곳에서 나 너무 외롭다. 운영 회의도 참석하기가 망설여진다. 돌이켜 보면 인생 자체가 그랬다. 언제나 홀로였지. 풍요 속의 빈곤이었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체념이 다. 나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거지. 밤마다. 새벽에도. 제기랄. 아니 염병할 고추 가루다. 어딘 선가 남자 교사 한 명만 떨어졌으면. ㅌ, ㅎ이 있을 때가 참 좋았는데. 나쁜 놈의 시키들.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생. 게다가 수업은 그 어렵다는 인문학! 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나 보다. 내가 듣기엔 딱 좋은데. 난 이런 수업만 들었으면 좋겠는데. 돌이켜 보니 저 나이 때는 나도 그랬다. 청각, 촉각, 그리고 시각적인 것들에 열광했다. 초라하던 나의 십 대에도 그것들을 향한 열정은 이 아이들 못지않았다. 새벽에 길 떠난 '집시 여인'을 사랑하고 겁도 없이 태양을 솟아 버린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동경했다.


쉬는 시간에 은밀히 상담을 한 효과가 있나 보다. 2교시 시작 후 s와 d가 조용하다. 아니 납작 엎드린 채 널브러져 있다. 부디 그 상태로 멈춰라. 제기랄. 역시 기대는 고추 가루 삼백 톤이다. 수업은 점점 무르익었다. 아이들의 고개도 무르익었다. 시계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피곤했다. 졸렸다. 그리고 갈망했다. 집에 가기를.

기념사진을 못 찍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기 바빴다. 평가는 월요일에 하자. h가 필기를 다섯 장이나 했다. 다른 아이들은 낙서를 그만큼 했다. 필기와 낙서. 아이들에겐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매력적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힘들었다. 사방으로 촉을 세우느라. 월요일부터 쌓인 것 합쳐서 고추 가루 이만 톤이다. 이유가 뭘까? 복합적이다. 아이들을 위한 고민, 긴장, 염려는 필요하지만 감당할 정도로만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것 때문에 불면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지긋지긋한 예민함. 누가 좀 가져갔으면. 내일부터 3일간 연휴다. 간만의 휴식 무얼 할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말자. 열두 시가 지났으니 편의점에 가자. 바구니를 사러. 라면을 사러. 지난번처럼 개한테 물리진 않겠지. 라면이 없는 편의점은 인문학 없는 세상이다. 바구니가 없다. 빈 상자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바구니가 없어도 일단은 들어봐. 조금 어렵고 난해하고 어려워도 인문학은 ‘구원’이니까.


2010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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