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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있는 사람

by 김인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이어지는 글에 ‘뒤끝 있는 사람’이라니 좀 생뚱맞다. 그럼에도 ‘뒤끝’이라는 주제는 최근의 나에겐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나는 뒤끝이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뒤끝이 없는 사람일까?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화가 나게 하더라도 그들 앞에서는 인내하고 참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비난을 했다.


사람들은 짜증이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상대가 있는 앞에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이 사람들 뒤에선 비난도 하고 심하면 욕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다. 하지만 그건 정신과 몸을 갉아먹는 좋지 않은 방식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엔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난 뒤끝이 없어.”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한 상사가 그랬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앞에서는 자기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뒤에서도 빠짐없이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항상 자기는 ‘뒤끝이 없다.’고 했다. 뒤끝이 없다는 말은 내게 아무런 감정의 일렁임이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상사가 그랬듯 세상엔 진짜로 뒤끝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pixabay


나는 상대방이 내가 정한 선을 넘기 전까지는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정한 선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표정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문제는 상대방은 내가 정한 선을 모른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가 정한 선을 넘으려고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그에게 적당히 암시를 주지만 눈치가 없는 사람은 여지없이 그 선을 넘는다. 그럴 때면 나는 직설적인 표현을 쓴다.


“저는 그거 싫은데요.”

“저는 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래서 심심찮게 ‘까칠하다.’는 말을 듣는다. 상대방 앞에서 분명히 내 감정을 말하고 기분이 상했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내 언짢은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 나는 뒤에서도 그 사람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을 되뇌며 험담을 한다. 나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 뒤끝이 없다는 건, 정말 아무런 감정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게 뒤끝이 있다는 건 이런 의미다. 불편한 감정이 내 일상을, 나의 삶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때로는 꺼내어 말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힘들었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표현의 방식이 아닐까?


더구나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고 정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뒤끝’이 있다는 건,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고 되짚으며, 다시는 같은 아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심리적 방어다. 그건 단순한 복수의 감정이 아니다. 내 감정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감정의 장치다. 나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뒤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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