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올해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는 사방에 습기를 잔뜩 뿜으며 짜증과 불쾌감을 동반한 채 사람들을 푹푹 찌는 한 여름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렇지만 나도 이번 여름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십 년이 넘게 살고 있는 여섯 평 원룸 한쪽 벽면에 강력한 무기 하나를 장착했다. 더위가 엄습할 때마다 빨간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해결이다.
4, 5월 두 달간 매주 목요일 학벌 없는 사회와 인문학 수업을 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강사 한 명이 2강씩 진행을 했다. 첫 강과 두 번째 강의는 수업 분위기가 달랐다. 인문학 수업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잘 마무리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다. 함께 기획한 페이스페인팅, 물 폭탄 던지기도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6월엔 인문학 후속 수업으로 경희대 캠퍼스 투어를 했다. 비가 오기 전 까진 제법 그럴듯한 캠퍼스 투어였는데 비가 내리자 아이들은 그들 나이의 본능에 충실했다. 7월 초엔 공설운동장에서 정자동, 함. 청과 친선 축구시합도 벌였다. 1학년 위주여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마치 초등학생 같았다.
7월은 여름방학과 여름 캠프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이번 여름캠프는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할 태세다. 보조교사 둘이 함께 하겠지만 말 그대로 보조 교사일 뿐이니까. 어제는 정자동 선생님과 함께 강원도 평창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때마침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났다. 대충 캠프 밑그림은 그려놓았지만 아직도 신경 쓰고 준비할게 많다.
공부방에 커플들이 생겼다 헤어지기를 반복 중이다. 일방적인 사랑의 부작용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상처로 남는다. 예방주사나 방부제 같은 것은 없는, 그래도 티키타카같은 로맨스는 아이들에게 한수 배워야 하는데. 수요일이었나? 한참 아이들 올 시간인데 J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엔 밥 사달라는 전화가 없었다. 그는 고3이다. 올해 결성한 축구부 동아리 후배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공을 차러 온다. 그에게 임시로 코치직을 맡겼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를 만나러 오는 중이란다. 취업 때문에 상담할 게 있단다.
"어제 공장 면접을 봤어요."
”그런데? “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이제 곧 수업시간이다.
"인마, 지금 바쁜데 미리 연락하지."
"쌤, 죄송해요."
"일단은 와라."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어요?"
설마 나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기 딴엔 내가 아이들이랑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나 보다.
“글쎄, 우선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그거 따려면 꼭 대학 나와야 해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전, 공장 생활은 싫어요.”
“그럼?”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고 싶어요.”
“전 경찰이 될 거예요.”
“전 잘 모르겠는데 운전을 하고 싶어요.”
예전의 장난기 가득하던 모습들은 어디 가고 이들 사뭇 진지하다. 각자의 바람과 꿈들은 있었다. 문제는 삶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그들 코앞에 다가섰다는 것일 터.
“어떻게 할까요?”
“꿈은 간직하되 일단은 나가서 부딪히고 깨져 봐.”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 내가 그랬듯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창밖에선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온다. 빗줄기는 시시각각 변했다.
“쌤 배고파요.”
“주방에 라면 있으니까 끓여 먹어.”
“감사합니다.”
J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방으로 내달린다. 7월 7일. 처음 취업을 나오던 날이 18년 전 바로 오늘이다. 그때는 오늘처럼 비가 오지 않았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
“설거지 다 끝내 놓고요.”
“인마, 정신없으니까. 담엔 미리 연락하고 와라.”
“알았어요.”
빗속을 뚫고 사라지는 이는 둘인데 우산은 하나다. 내가 쓰고 갈 우산이 없다. 아직 이 정도의 빗줄기는 아무것도 아닐까? 사라지는 아이들 옆에 두려움 가득 안은 열아홉 살의 나도 서있다. 저 아이들처럼 우산은 없다. 열 아홉살의 나는 비속에서 발가 벗겨진 모습으로 서 있다. 내 안에서 내리는 비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에게 한 번도 위로를 건넨 적이 없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내 안에서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강을 이룬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서 서른일곱의 나도 비를 맞으며 서 있다. 견우는 직녀에게 묻는다. 우리의 까치는 어디로 간 거지? 직녀는 견우를 향해 하염없는 손만 휘젓는다. 서른일곱의 나도 까치의 행방을 모른다. 세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던 시절의 나, 견우와 직녀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서있는가?
2011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