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짜릿했던 '동강 래프팅' 체험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둘러보니 강원도 평창의 한 펜션이다. 맞아, 어제 아이들과 여름캠프를 왔었지. 폭우는? 정신이 들자 하늘부터 살폈다. 흐리긴 했지만 구름이 많지는 않았다. 사방이 축축했지만 어제 같은 장대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선생님들에게 '별일 없냐'는 문자가 쇄도했다. 경기도와 성남은 사방이 물난리란다. 숙소의 아이들은 흡사 시체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녀석들은 날이 새도록 숙소와 주변을 좀비처럼 돌아다닌 모양이다. 잠에 취한 몇 명은 끝까지 아침 식사를 먹지 않았다. 한 끼에 육천 원인데.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정자동 선생님과 오늘 일정을 논의했다. 비는 오지 않을 거란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예정대로 래프팅 진행하죠"
"괜찮을까요?"
"강물이 적당히 불어서 오히려 더 재미있을 거예요."
나는 한 번도 래프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도 래프팅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하지만 래프팅을 해 본 선생님들은 더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비도 멈췄다. 안 하자니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아이들도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한채 십분 마다 와서 래프팅 여부를 물었다.
"선생님, 오늘 래프팅 하는 거 맞죠? 빨리 하고 싶어요."
"아, 래프팅 해요. 쌤."
"인철 쌤, 제발요."
"합시다."
래프팅 강사에게 삼십 분 정도 노를 젓는 방법과 구명조끼 착용 법을 배웠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동강을 향해서 저벅저벅 걸었다. 동강은 수위가 높았고 온통 흙탕물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같았다. 래프팅은 모두 네게 조로 나누었다. 원래는 1.5킬로 코스였는데 불어난 강물로 인해서 그쪽 코스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코스를 잡았는데 7킬로가 넘었다. 두 시간이 넘는 코스였다. 한 조당 래프팅 강사가 한 명씩 붙었다. 우리 조의 강사가 리더인 것 같았다. 그는 경험이 많은 듯 상당히 노련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출발 전 보트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강사의 구령에 맞춰서 우리는 탁하고 거센 물살을 헤치고 동강으로 씩씩하게 노를 저어 나갔다. 물살이 센 곳에선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탄성과 비명을 마음껏 질러댔다. 뒤따라오던 조와 한바탕 물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노련한 강사는 상대 조를 약 올려 가며 우리를 더욱 흥분시켰다. 강사가 우리를 보트 뒤로 바짝 밀착시키더니 몸을 앞으로 뒤로 흔들라고 했다. 하나둘, 하나 둘. 강사의 구령에 맞춰서 우리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하나둘, 하나 둘. 조금씩 요동치던 보트는 결국 배를 보이며 뒤집혔다. 우리는 순식간에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사는 가장 먼저 나를 보트 위로 끌어올렸다.
"구명조끼를 잡고 학생들 한 명씩 끌어올려 주세요."
아이들은 물속에서 구명조끼를 부여잡은 채 허우적거렸다. 다시 보트에 올라탄 우리 조는 거센 물살을 따라 아래로 아래도 진격했다. 강사가 동강에 얽힌 일화를 전해 주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감탄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연신 한 번 더, 한번 더를 외쳐댔다.
점심은 돈가스였다. 거센 물속에서 두 시간 넘게 허우적거리며 체력 소모를 해서 그런지 점심은 꿀맛이다. 평소에 잔반을 남기던 아이들도 배가 고팠는지 그릇을 싹싹 비웠다.
"선생님 오후엔 뭐해요?"
오후 일정은 '민물고기 생태 체험관' 방문과 '웰컴 투 동막 골' 촬영지 방문이었다. 아드레날린을 잔뜩 발산시키던 래프팅에 환호하던 아이들은 오후 일정은 시시 한 듯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선생님 저녁 먹고는 뭐해요?"
첫날 일정이 어그러진 탓에 아이들에게 미리 일정을 공지할 수가 없었다. 비가 멈추지 않으면 철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진행할 일정을 어제 모두 해버렸다. 정자동 선생님과 고심 끝에 동별 모둠활동(장기자랑)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큰 둥 했다.
"왜 우리가 정자동이랑 해야 해요?"
"맞아요. 그냥 우리끼리만 해요."
아이들은 정자동이랑 함께 캠프 가는 것을 싫어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생각이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닐 터.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 학교'라는 공동체성에서도 나와 선생님들은 모둠 활동을 밀어붙였다.
모둠 활동을 위해 저녁을 먹고 한자리에 모였다. 선생님 포함 모두 42명이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하나를 말하라고 했다. 서로를 좀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하지만 분위기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썰렁했다. 성의 없는 소개와 찬바람이 쌩쌩 도는 분위기. 등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자. 지금부터 한 시간 줄 테니 동별로 두 개씩 모둠활동을 준비하세요."
"정말 하기 싫은데."
"선생님 그냥 우리끼리만 하면 안 돼요?"
이십 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었다. 자원교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얼러 보지만 소용없었다. 정자동 아이들은 나름 장기자랑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공동체성이 무너지는 소리가 내 달팽이관을 후벼 팠다. 한다고 해서 딱히 좋은 것은 없는, 그렇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할 게 없어요. 그리고 싫어요. 안 할래요."
아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숙소에서 제 각각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있는 방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비록 센터에선 엄격한 선생님이자 시설장이었지만 캠프를 하는 동안은 아이들에게 날개 없는 천사가 되고 싶었다.
"연습 시간 다 끝나가는 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할 게 없어요."
"맞아요. 정말 할 게 없어요."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
"선생님 두 분은 잠시 나가 계세요."
아이들은 갑자기 돌변한 나의 표정과 말투에 당황한 듯했다.
"다들 벽으로 붙어!"
"너희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캠프, 캠프라고 해서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다 되는 거야. 선생님 혼자 자원교사 둘만 데리고 캠프 진행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게다가 폭우 속에서 행여나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삼십 분 한 시간 단위로 '선생님 우리 다음엔 뭘 해요?' 묻고 있는데. 폭우로 모든 일정이 어그러져서 선생님들은 조정하느라 머리가 쪼개질 지경인데 겨우 프로그램 짜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 싫다고 그렇게 니들 멋대로 너희들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가면 그게 캠프야. 그게 다야."
"아니요."
캠프 준비하느라 쌓였던 감정을 결국 아이들에게 쏟고 말았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감정은 어제 몰아치던 천둥과 폭우보다 더 격심했다. 아이들에게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상황이 몰고 온 스트레스가 터졌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서 삼십 분 후 아래로 내려온다. 알겠어."
"네."
서릿발 같은 음성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모기처럼 작았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할 게 없는데 아무거나 준비해도 돼요?"
"뭐라도 좋아."
아이들은 그제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불이 붙더니 절대로 정자동한테 지면 안 된다며 대본을 써 내려갔다. 좁은 공간과 무대 같지 않은 무대. 돌발 상황은 으레 있기 마련이지 않던가? 특히나 이번 캠프는 더욱 다이내믹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하간 좁은 방안에 모인 우리들은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썰렁했던 분위기와 달리 본격적으로 장기자랑이 시작되자 경직된 표정들이 조금씩은 풀어졌다. 장기자랑이 진행될 때마다 웃음이 터졌고 준비한 팀들은 긴장한 모습들이 그대로 보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상품(과자)을 전달하고 삶은 옥수수와 미리 주문한 치킨을 먹으며 캠프 두 번째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치킨은 맛이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수많은 별명에 '벽붙'이 추가된 것이.
2011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