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뚫고 간 '여름캠프'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여름 캠프 첫날이다. 밖은 아직 깜깜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다. 알람은 6시 30분에 맞춰 놓았다. 창문을 열기전 기도를 했다. 어젯밤에도 천둥과 번개가 잦아들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창밖은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전화 한 통과 문자 세 통이 와 있다.


"선생님 이렇게 비 오는 데 오늘 캠프 가요?"


에버랜드. 강원도, 평창, 어름치 마을. 미처 정신이 들기도 전에 캠프와 관련된 몇 개의 단어들이 스쳤다. 이번 캠프도 변수는 날씨였다. 텔레비전을 켰다. 날씨를 전하는 아나운서는 물에 잠긴 서울과 경기도 곳곳을 안타까운 음성과 표정으로 전했다.

사진출처-pixabay


불안한 마음으로 채널을 돌렸다. 모든 채널에서 날씨 특보가 나오고 있었다. 강원도 춘천에선 산사태가 났다. 펜션에서 잠을 자고 있던 대학생들 사고가 속보로 전해졌다. 초등학생들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나온 인하대 학생들이었다. 펜션 주인은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번개와 천둥은 시시각각 내 머리와 벽을 때렸다. 그 사이에 또 문자가 왔다.

"선생님,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오늘 캠프 가나요?"


학부모 중 한 명이었다. 예정대로라면 8시까지 푸른 학교로 가야 했다. 오늘 일정은 에버랜드였다. 전날 캠프를 못 가게 하던 삼촌 때문에 울먹이던 s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선생님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오늘 캠프 가요?"


캠프를 취소할까? 아니면 연기할까? 장소 섭외며 예산 확보, 프로그램까지. 지난 두 달을 얼마나 애 먼 글 면하며 준비했는데 보험료며 도시락 등등 지금까지 들어간 경비는.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캠프는 정자동과 함께 하기로 했다. 정자동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이 사태를 어쩌죠?"

"어떡할까요? 난감하네요."

선생님도 나도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떤 식으로든 결정은 해야 했다. 폭우를 뚫고 캠프를 갈 것인가? 아니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음으로 미룰 것인가? 제주도 캠프 때도 비를 피해 다녔으니 이번에도 믿어 볼까? 하지만 섣부른 행운에 아이들의 안전을 맡길 수는 없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다시 채널을 돌렸다. 그 사이 산사태 희생자는 더 늘었다. 또 문자 한 통이 왔다. 에버랜드 일정을 진행할 KT&G 복지재단 담당이었다.

"폭우로 인해 오늘 에버랜드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에버랜드는 취소됐다. 캠프는 어쩌지? 이 순간에도 천둥과 벼락이 천장과 벽을 때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어름치 마을에 전화를 했다. 그곳도 비가 온단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캠프를 취소를 한다고 해도 뒷감당이 간단치 않았다. 날씨 예보는 평창도 금요일까지 붉은색이었다.


"에버랜드 일정은 취소됐으니 일던 오전 11시까지 모이기로 하죠?"

"그럼 캠프는 예정대로 진행하는 걸로 할까요?"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잖아요."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캠프는 예정대로 갑니다. 오전 11시까지 푸른 학교로 모이세요."

"정말 가는 거예요?"

"엄마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래요."


못 가는 아이들이 생겨도 어쩔 수 없었다. 푸른 학교로 가는 중에도 우산이 찢어질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문 앞에 가방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일찍 온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다. 오전 열한 시가 되자 2학년 세 명(s, h, j)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자원봉사 선생님도 시간 맞춰서 오셨다. 아이들은 이 심각한 상황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 선생님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줄은 모르고.


s에게서 전화가 왔다. s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삼촌이 완강했다. ㅂ선생님이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h와 j는 어떡해서든 삼촌에게 허락을 받을 심산인지 s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곧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점심을 할 게 없었다. 급식 선생님도 없었다. 라면과 김치 그리고 찬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한 시에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폭우는 더욱 거셌다. 도로는 곳곳에서 강을 이루었다. h와 j가 빗속을 뚫고 버스로 달려왔다. s와 캠프를 함께 가지 못하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출산이 임박한 탓에 함께 캠프를 가지 못하는 ㅂ선생님이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주라며 흰 봉투를 건네셨다. 우리는 그렇게 폭우를 뚫고 정자동으로 향했다. 정자동 선생님과 학생들을 모두 태우고 두시가 넘어서 강원도로 향했다.


정자동 선생님도 부모님들과 전화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발 캠프를 무사히 다녀올 수 있기를 빌었다. 폭우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에도 멈췄다가 쏟아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경기도를 벗어나자 빗줄기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강원도로 향하는 우리를 가로막는 빗줄기는 시시각각 변했다. 중간쯤 갔을까. 어름치 마을에서 전화가 왔다.


"여기도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요."


평창에 들어서자 동강이 보였다. 강물은 불어서 물살이 거셌고 흙탕물이었다. 캠프 장소인 어름치 마을은 오후 6시쯤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도시락부터 먹었다. 새벽부터 한 끼도 못 먹었던 터라 도시락은 꿀맛이었다.


"선생님 이제 우리 뭐해요?"

"뭘 하지?"


에버랜드 일정이 취소된 탓에 오늘 일정이 어그러졌다. 저녁에 진행할 프로그램이 없었다. 이 상태라면 내일 일정인 '백룡동굴 탐사'와 '동강 래프팅'도 가능할지 싶었다. 여차하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성남으로 가야 했다. 찜질방이라도 데리고 가야 하나. 정말 그럴 생각도 있었다. 내일은 폭우가 멈추기를 바라며 내일 일정이었던 담력 테스트를 준비했다. 준비 팀을 데리고 담력체험을 할 코스를 살폈다.


폭우는 담력체험을 하기에 딱이다. 준비 할 것도 없었다. 밤 열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담력체험을 했다. 시시하다는 아이, 무섭다는 아이, 재미있다는 아이,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귀신 역할을 맡은 나와 아이들은 비에 홀딱 젖었다. 폭우를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던 폭죽은 고요했던 시골 밤하늘을 밝게 수놓았다. 캠프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친구 누나 선배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신나 있었다. 내일은 날씨가 맑아지기를. 새벽 한 시가 넘었어도 진실게임과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 속에서 지친 몸을 누웠다.


2011년 7월 30일

keyword
이전 22화열아홉 살의 나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