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로 하면 안돼?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청소년 인문학 수업이 다음 주 목요일이면 끝이 난다.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 인문학 수업이다. 한번 경험을 해서 이번엔 조금 쉬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사진출처-pixabay

나의 성장 통 이야기, 분홍 리본의 비밀, 신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가위보로 하면 안 돼? 까지 이번 인문학 수업은 작년에 비해서 조금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들어갔다. 강의 방식도 작년과는 달랐다. 작년엔 8차시를 선생님 한 분이 각자 1회씩 진행했었다. 올해는 선생님 한분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2회씩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다 보니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첫 강의와 두 번째 강의의 수업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첫 번째 수업을 해주신 백** 선생님은 ‘나의 성장 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 한창 육체적 정신적 성장 통을 겪고 있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 볼만한 주제였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첫 수업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수업 내내 진땀을 빼시던 선생님은 결국 십 분을 남겨두고 수업을 포기(?)하셨다. 영상을 활용한 두 번째 수업은 비교적 무난했다.


‘레밍 딜레마’와 ‘트루먼 쇼’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마도 ‘에미’와 ‘트루먼’은 아주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그들은 아주 특별한 존재다. 나는 그들처럼 내게 주어진 상황을 박차고 나올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져도 왜?라는 물음조차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 수업을 통해서 한 두 명 정도는 다른 세상을 향해 점프하는 ‘에미’나 ‘트루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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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라는 김** 선생님의 강의는 아이들에게 단지 종교를 넘어선 철학적 사고와 탐색이었다. 보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믿는 것은 존재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공기, 바람, 사랑. 마치 작심을 하고 아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신의 존재 여부를 묻는 선생님의 지극히 스토킹스러운 질문은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을 혼란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과연 이 수업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 궁금했다.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이 압권이었다. 인간은 그 자체를 논할 수 없다.


‘분홍 리본의 비밀’이란 주제로 진행된 배** 선생님의 강의는 차분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선생님은 어떤 마법을 부리셨는지 채 십 분을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어하던 아이들을 수업 시간 내내 꽁꽁 묶어놓았다. 남자란, 여자란, 그리고 사랑이란? 사랑은 오직 인간만이 공유하는 감정일까? 바다 한가운데서 죽어가는 돌고래를 구하기 위한 동료들의 우정은 오직 인간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오만함에 경적을 울리는듯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강사인 이** 선생님의 ‘가위보로 하면 안 돼?’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크건 작건 우리는 매일 정치 행위를 한다. 단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고양이와 쥐,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색깔만 다를 뿐 고양이는 고양이다. 고양이는 고양이만을 위할 뿐 결코 쥐를 위하지 않는다. 단지 위하는 척만 할 뿐이다. 그래서 쥐가 권력을 잡는다. 하지만 쥐는 고양이 세계에 들어가면 다시 고양이가 되어 버린다. 고양이가 되지 않는 쥐는 없을까? 이런 알레고리를 아이들이 쉽게 이해했을까?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정치를 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로 청소 당번 정하기! 오늘도 그 신성한 정치 행위에서 고배를 마신 몇 명은 빗자루와 걸레를 들어야 했다.


수업이 마무리되는 지금 나는 작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작년엔 아이들과 인문학 수업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어설프지만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모둠별로 '작은 논문'도 쓰고 발표회도 가졌다. 그런데 올해는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질 않는다. 우리는 이번 인문학 수업을 통해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토론을 해볼까? 아니면 실천할 수 있는 거들을 찾아볼까?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찾으면 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서 학벌 없는 사회 선생님들이 매주 고생이 많으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채** 선생님, 이** 선생님, 짧은 시간이지만 천방지축 사내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신 김** 선생님, 그리고 매주 아이들 간식을 챙겨 주신 선생님 한 분도. 무엇보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이끌어주신 강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 이제 나머지 숙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고 그것은 나와 아이들의 차례다.


2011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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