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화사하다. 봄은 왔는데 내 봄날은 스치듯 가버린 모양이다. 기분 탓이다. 오늘 아침에 병원을 다녀왔다. 서른이 되기전부터 한달에 한번씩 병원을 다닌다.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은 하루나 이틀 전부터 예민해진다. 음식도 더 조심 해야한다. 건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이 나에겐 부주의함과 게으름이 된다. 나의 부주의함과 게으름이 오늘은 어떤 수치로 나올까? 역시나. 지난 몇 개 월의 결과가 그대로 수치로 나타난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안좋다. 그는 나의 무책임과 게으름을 탓하는 듯 모니터의 숫자를 한참 쳐다본다. 무덤덤해 보려 하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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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시험기간인데도 공부방에 온 아이들은 해맑다. 역사는 120년, 일상은 3개월 단위로 같은 궤를 이룬다. 오늘은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날이다. 단단히 맘을 먹고 아이들을 맞는다. 하지만, 별거 아닌 것들, 늘 보아왔던 아이들의 평소 모습인데 왜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다시 속으로 포커페이스를 잡는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내가 알거나 나를 알거나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전화는 나를 위함이기 보다는 그들을 위함이다.
따르르릉. 3학년 수학 담당 선생님이다. 이 시간에 울리는 벨소리는 불길하다. 예상대로 일이 있어서 못 온단다. 안되는데.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3학년은 자율학습이다. 하지만 자율이 가능할까? 2학년과 3학년 자율은 타율이 되었고 그 타율은 추신수의 '추추트레인'을 능가했다. 겨우 참고 있던 나의 '포커페이스'는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다. 수업시간, 한 녀석이 나의 포커페이스를 흔들기 시작한다. 그 아이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내가 뭘 하든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으니까 서로 조심하자."
"알았어요."
하지만 나를 보는 그 아이의 표정은 긍정이 아니다.
"시험은 도대체 왜 보는 거예요?"
당연한 것을 이상하게 물어보는 아이들. 평소 같으면 웃으며 넘어갈 일이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아이의 생각 없음에 속이 상한다.
종례시간이다.
"도대체 시험 같은 것은 왜 보는 거예요?"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거예요."
"이놈들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어디 있어? 너희들이 학교를 안다녀? 학교 밖 아이들이야. 진짜 너희들한테 완전히 실망이다!"
아이들도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하고 놀란 눈치다.
"선생님 오늘은 좀 먼저 들어갈게요."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 생활복지사 선생님에게 맡기고 오늘은 먼저 공부방을 나왔다.
나는 오늘 포커페이스에 실패하고 말았다.
2011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