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통 이야기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두 번째로 진행되는 청소년 인문학 수업의 첫 시간 주제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한 선생님이 2강씩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학벌 없는 사회 선생님들과 계란으로 캐릭터 화 시킨 삶은 달걀?(홍보물)이 인상적이다.
레밍 딜레마 , 레밍의 집단 자살은 축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광기의 결과다. 하지만 그 행위는 분명 사실이다. 그 무의식적인 죽음의 행렬에 아무도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때 단 하나 '에미'라는 레밍만이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왜 벼랑 끝으로 떨어져야 하는 걸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레밍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거니까?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에미 만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세계를 본다.
트루먼쇼. 영화는 영화 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공상 과학 영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들이. 영화가 삶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영화를 투영한다. 서른 살이 넘도록 자신의 일거 수 일투 족이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생방송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주인공 트루먼. 우리도 그 거대한 관음증에 동참한다.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실생활의 나는 어떤가?
생각 없이 거리를 거닐던 때 아주 우연히 나를 정면으로 관음 하는 카메라 한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또 한대가 나를 관음 했다. 범죄예방과 물적 증거의 확보라는 이름으로 관음 하는 실용적인 카메라들. 카메라 넘어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볼 것 없는 나, 아니 우리를 관음 하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순응하되 질문하지 않는 레밍이다. 하지만 나는 '에미'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한번 마음먹고 세어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넷, 다섯. 거리를 배회하며 누군가를 관음 하는 카메라의 숫자 세기는 썩 유괘 하지 않았다. 그 숫자는 대략 스물두 개 정도에서 끝이 났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태로.
질문하지 않는, 생각하지 않는 대다수 레밍처럼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인가? 물음표를 던진, 생각하는 '에미'처럼 그곳을 박차고 뛰어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인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은 결국 하늘(천장)을 만지고 만다. 천장을 뚫고 그 또한 새로운 세상을 접한다. 이십 년 후에 십 대의 나를 상상해본다. 상상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상상했나?
"삼십 년 후의 너희들의 십 대는 어떨 것 같니?"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십 대 시절은 어땠어요?"
"나의 십 대는 어땠냐고? 나는 어땠지?"
"어땠는데요?"
"암담했어."
"암담, 뭐가 그렇게 암담했어요?"
이틀 테면 말이야. 장마가 지고 나면 개울물이 불었다. 논에 있던 미꾸라지들이 실개천으로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장화를 신고 촘촘한 그물을 어깨에 둘러메고 저만치 위에서부터 그물을 향해 저벅저벅 물질을 해댔다.
"우와. 재미있었겠다."
"그러게요. 뭐가 암담해요. 난 한 번도 그런 거 못해 봤는데."
딴은 그렇겠다. 시리고 춥더라도 이미 지난 시절은 충분히 아름다운 법이니까. 게다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들은 쉽게 꺼내지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아직은 잘 모를 테지. 이 또한 십 대를 통과하는 성장통의 하나. 여하간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나의 십 대는 충분히 암담했어. 물론 좋을 때도 있었지. 엄지손가락 두배 보다도 두꺼운 미꾸라지 세 마리가 그물 위에서 파닥 거릴 때처럼. 그리고 채 1킬로그램이 되지 않는 미꾸라지를 추어탕 가게에 팔았지. 그것이 내 생애 첫 번째 용돈벌이. 이십 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의 성장 통은 그렇게 아물었을지도 몰라.
지금 바로 여기 , 너희들의 성장 통은 과연 무엇이더냐? 희망 없음이여, 꿈이 없음이여. 그리고 이 시간 너희들을 처음 대하는 강사 선생님을 진땀 빼게 하는 끝이 없는 산만함이여. 그런 것이 성장 통이더냐?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는 교황까지는 아니어도 성직자가 되고 싶어요. 오호라. 너는 지금도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구나.
장마 후의 실개천 그물에 걸린 미꾸라지처럼 파닥거리던 아이들은 결국 종료 십 분을 남겨두고 강사가 수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강사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파닥거리는 십 대를 대상으로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자리에만 앉아 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도 꺼려하실 터. 그렇지만 너희들은 오늘 도가 지나쳤다.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끝내기엔 오늘 저녁 메뉴로 나온 김치찌개가 너무나 훌륭했거든.
2011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