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열풍이 불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학기 초부터 공부방에서 동아리 열풍이 분다. 댄스, 장기, 축구. 오케스트라. 신입생들은 장기와 축구에 아주 팍! 꽂혀 있다.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장기판에 시선을 꽂은 채 상대방을 한방에 비명횡사시킬 외통수를 노린다. 작년 이맘때도 장기 바람이 불긴 했는데 그때는 잠깐이었다. 이번에도 잠깐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래간다. 아예 장기 올림픽이라도 한 번 열어줘야 할 분위기다. 그 열품에 나도 끼어들었다. 누구 던 지 한 번이라도 지면 아이스크림을 쏘기로 했다.
처음엔 규칙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자신감이 붙었는지 한두 명씩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림없다. 장기 대회를 열기로 했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2학년 S에게 대회 조직을 해보라고 했다. 대진표를 만들어서 게시판에 붙여놓았더니 8명이 신청했다. 지금 두 명이 예선을 통과했다. 3학년 선배들도 처음엔 구경만 하더니 수업이 끝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에둘러 앉아서 훈수를 두고 있다. 부작용은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확인 전화와 퇴근이 늦는 것.
사진출처-pixabay
지난 주말에 댄스 동아리 '핑크래빗' 리더인 S에게서 문자가 왔다. S는 지난 일 년 동안 강사 없이 댄스 팀을 꾸려왔다. 여학생만 셋이었는데 지금은 남학생 한 명이 합류했다.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해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 푸른 학교 문화제때 정자동 친구들의 방송 댄스를 보고 꽤나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그동안 인터넷으로 열심히 댄스강사를 섭외했던 모양이다. 시간 내서 같이 만나주었으면 한다. 수강료도 얼마쯤은 후원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장소 섭외까지 하고 있었단다.
지난주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연습실이 있는 모란으로 향했다. 댄스 강사는 스무 살이 좀 넘은 여자였다. 천편일률적인 걸 그룹을 흉내 내기보다는 청소년기의 발랄함을 보일 수 있는 춤을 가르쳐 주었으면 싶었다. 선생님도 아이들이 착하고 예뻐서 거의 무보수로 가르쳐 주겠단다. 작년에 학생밴드를 해체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거지만 열정만 한 수강료도 없다. 힙합. 문외한인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런 걸 가르칠 모양이다.
일단은 좋았다. 동아리 아이들도 좋아했다. 잠깐 시범을 보이는데 전문가라 그런지 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연습을 한 다음날이면 그네들은 여지없이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을 텐데. 고심 끝에 댄스 수강료는 한 달에 십만 원 드리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과 책임감 차원에서 수강료 중 일부는 동아리 아이들이 보태기로 했다.
일 학년이 주축이 된 축구 동아리는 아직 모호하다. 동아리 이름이 S.C.V(스타그래프트 테란 종족의 일꾼)다. Soccer Club Victory의 약자이기도 하다. 리더가 된 B는 아직 구체적인 동아리 기획서를 내지 않고 있다. 4월 정도 다른 기관과 축구시합을 추진해 볼 생각이다. 0대 5로 깨지고 나면 오기가 생기지 않을까? 잘되면 학부모 후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장기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2학년 K도 장기 동아리를 계획 중이다. 묘수풀이 책을 사주었더니 프로 기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 조만간 섭외해주겠다고 하긴 했는데 어떻게 찾지? 하여튼 할 일이 생겼으니 찾으면 될 터. 이제는 나도 그를 대적하기가 만만치 않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길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오케스트라도 새로 시작한다. 한 번씩 공연을 마치고 나면 실력 운운하며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올해도 오케스트라는 계속 간다. 새내기들은 아직 악기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하다. 선배들은 후배 가르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일 학년 아이들 표현대로라면 지도 방식이 거의 '파쇼' 수준이다. 덕분에 오케스트라 선생님이 할 일이 없어지셨다. 삐걱거리긴 하지만 성남시립교향악단에서 강사(바이올린)도 한 명이 파견될 예정이다. 내내 장기 구경만 하던 M이 자기도 예선 통과했다며 싱글 벙글이다. 그의 미소가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가 무엇을 하면서 모종의 성취감을 맛본 것은 오랜만 이어서겠지.
2011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