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기억하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요즘 딱히 힘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연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매일 좌불안석이다. 생각, 판단, 열정이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버린 것 같다. 왜 그럴까? 깨진 거울 앞에서 물어봤자 소용없다. 앙상한 몸만 발견 할 뿐이다. 일상이 멈춰버렸다. 공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간다 한들 소용이 없다. 심드렁한 표정의 주치의는 스트레스라고 하겠지. 내 증상을 위한 맞춤형 진단 키트는 없으니까. 생각이 멈춰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이 멈춰버린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는 상황들이 과도하게 흐르다 넘쳐버린 탓이다. 과부화된 노트북이 푹 꺼져버리듯이. 내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생각은 거의 백지다. 뜨겁던 열정도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은 나의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열정, 슬픔, 분노, 쓸쓸함, 고독은 마비라는 단어로 희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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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몸은 아니다. 생각은 정지 되었지만 몸은 습관처럼 움직인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이를 닦고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매일, 매주, 매달 할 일을 계획한다. 회의시간엔 상대방의 말에 플러스 펜으로 메모를 한다. 한 시간 후에 만나야 할 사람을 생각한다. 세 시간 후에 가 있을 장소의 골목을 누빈다. 한달 후의 일정을 체크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다. 판단이 아니다. 내 몸이다. 몸은 행위만 아니라 결과도 대신 한다. 행위는 통증으로 나타난다. 두통은 첫번째 증상이다. 입술이 헐고 배가 아프고, 입맛이 없다. 증상은 시계처럼 정확하다.
경험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몸으로 기억된다. 차곡차곡. 삶에서나 일터에서건 다르지 않다. 하나나 둘 정도를 제외하면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터에서의 예외란 언제나 아이들과의 갈등(관계)에서 발생한다. 정도를 넘는 갈등이나 긴장이 감정을 촉발시킨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정도의 긴장은 있게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긴장과 갈등이 주는 감정의 폭발을 자제시키는 방법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갈등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안으로 삭인다. 무언가를 던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지 몸으로 기억하게 만들 뿐이다. 창고에 쌓아둔 오십만 원짜리 매트에 전속력으로 온몸을 부딪치거나 화장실 문 앞에서 100 데시벨 이상의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이런 감정을 발산하는 조건은 반경 이십 미터 내에 의식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가능하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한 번 있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평소처럼 늘 지각을 하던 아이였다. 그는 내가 십년지기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거나 다섯 번 정도 데이트 신청을 한 여자에게 퇴짜를 맞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몸으로만 기억하는 행위는 언제까지일까? 이것은 계속되는 것일까? 불안하기는 하지만 나쁠 것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나의 삶과 일터와 아이들 속에서 내가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남으려면.
2011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