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선에서 원으로 사라진다
어쩌다 사회 복지사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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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항상 선으로 내려서 원으로 사라진다.'
오래전 인터넷에서 본 문구다. 한 사람의 통찰은 누군가에겐 평생 간직하는 경구가 된다. 지난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던 순간 천둥과 벼락의 순간에 한동안 잊고 있던 저 문장이 떠올랐다. 모든 비는 선으로 내려서 원으로 사라진다. 이 문장은 은유와 직설이 뒤섞인 파토스(호소)다. 답다는 것이 다울 때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다. 답다는 것은 그 모습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봄은 봄 답지가 않다. 지금도 밖에선 봄비가 선으로 내리지만 빗줄기는 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뒤이어 불어올 황사도 5월의 훼방꾼이다. 5월은 우리에게 다양한 색체와 모습으로 찾아온다.
분홍 리본의 비밀. 인문학 수업 3,4차시를 큰 탈 없이 마무리했다. 특히 4차시 수업은 아주 명 강의였다. 이제껏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아이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모든 선생님들이 감격스러워했다. 남자는 왜? 여자는 왜?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어떤 현명한 답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사랑이라는 것의 명쾌함. 그것은 인류애적인 사랑도, 동물적인 사랑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가 없다. 그것이 명쾌하다면 이제껏 등장했던 모든 시와 소설, 희곡, 드라마속에서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돌고래가 주인공인 영상을 봤다. 죽어가는 돌고래 한 마리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동료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동물에게서 보는 인간성. 그들의 행위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동물에게 행하는 가장 큰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뭘까? 사랑. 까짓 거 사랑 그거 쫌! 분명한건 나는 지금 사랑해야 할 대상들을 놓치고 있다. 아이들도, 나의 가족도, 친구들도. 심지어는 나 자신마저도.
사춘기에 들어서는 공부방 아이들 몇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희들마저, 라는 믿음에 대한 배신 이어서일까? 요 며칠 아이들과의 묘한 힘겨루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는 외면과 무시 전법도 활용한다. 진심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정답일까? 싶지만 이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알지만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잘 풀어야 한다. 그렇지만 옆에 도움을 청할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래서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이제 아이들과의 힘겨루기는 그만 해야겠다.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육성재단,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우리와는 다른 매우 세련된 시설과 환경을 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작아지고 위축이 된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나선 것처럼. 화려함과 세련됨은 수수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화려한(?) 기회가 왔을 때 혹여 푸른 학교 아이들도 나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지레 포기해 버리지는 않을까? 시작은 쉽지만 지속은 어렵고 아름답게 끝을 맺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서로에게 결핍된 것들을 채우고 의미를 찾는다.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묻겠지. 왜 꼭 그래야 하냐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모든 비는 선으로 내려서 원으로 사라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