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뒤늦게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 1Q84. 주인공 아오마메가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 가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은 두 개의 달이 뜨는 1Q84년의 세계다. 공기번데기, 리틀피플, 교단 선구, 후카리에, 고마쓰, 그리고 아오마메의 연인 덴고. 1Q84년의 4~6월은 제목의 Q처럼 물음표로 가득하다.
"이봐 덴고. 재능과 감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도 반드시 배부르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는 거야"
-1Q84 p.144-
하루키의 소설 초반에 나오는 덴고와 고마쓰 간의 대화다. 덴고는 재능 있는 작가 지망생이고 고마쓰는 감각이 넘치는 출판사 편집자다. 또 한 명의 재능자 후 카리에, 소설 초반이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아오마메. 1Q84의 등장인물은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작가 한 사람이 만들어 냈다고 하기엔 인물의 사고와 행동이 생생하고 독립적이다.
이십 대 초반이었나. 어느 번화한 거리의 서점에서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내가 서점 카운터 위에 그 책을 올려놓지 않은 까닭은 그의 소설이 매력적이지 않았다기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세련되고 재미있고 가독성도 좋다. 제목과 소설의 설정도 독특하다. 작가 자신을 내면화시킨듯한 인물들의 나르시시즘적인 화법이나 독백도 끌린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일은 버겁다. 사실 그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 소설들이 있다. 몇 번이나 완독을 실패했던 '백 년 동안의 고독처럼'. 어쩌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죽을 때까지도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하루키는 인물의 심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드러낸다.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는 것처럼. 툭툭 내뱉듯이. 소설도 그런 식으로 쿨하다. 그렇다고 유쾌한 것도 아니다. 밋밋하다. 분명한 건 그런 밋밋하면서도 쿨한 분위기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그의 소설들은 서구화된 일본 사회의 전형이다. 개인이라는 부분에서 국가나 사회라는 전체를 보는 것처럼. 그의 소설에서 전통적 요괴나 정령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광적인 로망에 기대는 서구(유럽)적인 문체와 표현들. 유럽의 한 골목의 레코드 가게에 있는 것 같은 말랑말랑한 음악적 취향. 스시나 사케보다는 화덕에 구운 피자와 보르도 산 와인이 더 어울리는 문장들. 특정한 장소와 지명, 그리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외하면 하루키의 소설에서 일본적인 색채는 오히려 흐릿하다. 그가 내놓는 작품마다 세계적으로 읽히고 매년 한림원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겠지만.
고마쓰의 확신처럼 '재능'과 '감'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재능을 택할 것이다. 조금 굶주리더라도. 뭐, 이따금씩 스스로나 타인들에 의해서 잡쳐지는 감정이나 물적 욕망. 그 딴것들의 결핍엔 익숙하니까. 야구 관람이 아니라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문득 소설이나 써봐야겠다고 했던 서른 살의 나에겐 말이지. 요즘에 찾아오는 하얀 밤들은 불면이라기보다는 하루에 자야 하는 잠의 총량이 넘어섰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예전처럼 다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지. 밤이건 낮이건 간에. 그건 그렇고 이번엔 잘하면 하루키의 소설 한 편은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