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손편지를 꺼내보며 1

만남 그 자체..

by 그리여

누렇게 바랜 편지지

오래전에 친구에게서 받은 손 편지를 보며

옛날 그 시절 그 모습을 기억하려 해 본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는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구나 생각하니

뭔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풋풋했던 20대의 한 자락을 들여다본다


보고 싶은 벗에게

만남, 그 자체. 왜 이다지도 야속한지

너무나도 멍청한 나 이기에 애만 태우고 말았지

고향에 와서 재미있게 놀다 갔으리라 믿는다.

물론 몸도 건강하겠지. 너는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보고 싶었는데 그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더구나

이미 지나 버린 일이지만 말이야

휴가가 지나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답답하고 정신상태가 풀린 상태야

하루의 시간들이 아깝다고 느끼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시간 때우는대만 급급하다고나 할까

편안하니까 더더욱 편해지고 싶은 인간의 얄팍한 심리

지금 나 자신이 그런 상태니까

이젠 더위도 한풀 거인 듯 아침저녁으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왠지 가을을 느끼게 하는 기분이야

ㅇㅇ야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나처럼은 안 그렇겠지 나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니까 넌 열심히 보람 있게 보내리라 생각한다

난 겨울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른다는 게 겁나고 무섭지만 무더위에 지쳐서 나태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불쾌지수가 높아서 서로에게 짜증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

나쁜 것만 보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가 봐

지금 밖에선 까만 정막의 세계가 고요히 온 밤을 뒤덮고,

심란한 마음을 잡을 길 없어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높여서 음악을 듣고 있어

ㅇㅇ야 요즘은 음악을 들으면 미칠 것만 같아. 안 들을 수도 들을 수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어

굳게 마음먹고 잊으려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

이 세상에 남자가 그 애 하나밖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하고 나 자신을 달래고 있어

그리고 ㅇㅇ야 나 직업을 바꿀까 해

좀 더 많은 사회경험을 하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인생공부랄까 힘이 들고 짜증이 나도 이번 직장만큼은 오래 있고 싶거든

직장은(ㅇㅇㅇㅇ) 백화점 비슷해

서서 하는 일은 처음이라서 내가 생각해도 힘이 들 거라고 믿어

열심히 보람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난 안 되나 봐 왜 이리 마음을 잡지 못하는지

모든 게 자꾸만 흔들려

ㅇㅇ야 언제나 너에게 이런 사연만 띄우게 되는구나

요번 휴가 거제도에 갔다 왔걸랑

여자 5명이서...

모두들 연인끼리 식구끼리 왔더라

조금은 부럽더라 우스갯소리로 현지 조달한다고 했지만...

허지만 고요한 밤하늘 아래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여기에 샴페인도 한잔하면서 모기가 뜯는 것도 잊으면서.. 난 바다가 너무 좋걸랑

요번 바다에 질리도록 많이 보았어 눈이 아프도록 파도. 갈매기. 수평선. 통통배. 낭만적이지.

바다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

ㅇㅇ야 요번에 찍은 사진 한 장 보내줄게

너도 좋은 사진 한 장 보내주길 바래

몸 건강히 잘 지내고 너의 사연 적어 보내줘.


어느 날 늦은 밤 12시에 친구가 나에게 쓴 편지에 난 무엇으로 답장했을까

흔한 20대의 고민이 세월이 지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싶다

가을의 초입에 친구의 오래된 편지가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준다

낙엽이 뒹굴고 가을냄새가 나는 눈이 부신 날에

친구에게 답장을 저 하늘에 보내본다

잘 지내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니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너와 나의 역사가 여기에 있어


너도 나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을까

난 무엇이라고 썼을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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