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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보며 다른 것에 시선을 꽂고 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by 그리여

날씨가 좋아서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날이다

약간은 흐리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가끔 짙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태양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저기 물고기 보여?

내편이 물고기가 보이냐고 하는데 나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어디? 난 안 보여

같은 곳을 보는데 왜 못 봐?


난 물속을 보고 있어

물 위에서 움직이는 물고기가 안 보이는 거야?


응 난 물 위보다 좀 더 멀리 더 깊은 곳을 보고 있거든

이상하네 저게 왜 안 보이지

자기도 저기 물속에 비친 나무를 봐봐 고기는 안 보일 거야

내편이 내 말대로 물속에 비친 나무를 찬찬히 보더니

어! 정말 고기가 안 보이네

그렇지? 같은 곳을 보더라도 어디에 시선이 꽂히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

왜 물을 보면서 나무를 보고 있어? 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렇지 않아 난 물이 품은 숲을 보는 거야! 지극히 예의를 차리고 보는 거지

왜 물을 보면서 고기는 안 보이는 거지?


무언가를 바라볼 때 서로 다른 대상에 초점을 맞추니, 사물이나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련가

시선은 단순한 눈의 움직임을 넘어 현실을 독창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도 한다.


같은 곳을 봐도 난 저 속에 있는 숲이 먼저 보여

저기 헤엄치는 물고기도 봐줘


내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하트표시는 헤엄치는 물고기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거 같아! 나무사이로 유유히 돌아다니네

그렇긴 하네

나는 물이 품어서 만든 새로운 풍경의 나무를 보는 게 좋 예쁘지?


우린 같이 다니면서 늘 다른 것에 꽂힌다

내가 못 보는 것을 내편이 발견해서 알려주고, 내편이 보지 못한 것을 내가 알려 준다.

그러다 보니 우린 더 많이 자연을 즐긴다.


얘를 던지면 돌면서 떨어진다

어! 저기 헬리콥터다

응? 처음 봐

날리면 뱅글뱅글 돌아!

오 신기하네 이런 게 다 있네

촌스럽기는 이걸 처음 본거야?


그러면서 휙 던지니 뱅글뱅글 잘도 돌면서 떨어진다.

순식간에 떨어진다

복자기 나무라고 한다.

떨어지는 모습이 프로펠러 같아서 헬리콥터 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열매가 겨울이 되면서 떨어진 듯하다.


내편은 이렇게 뭐든 잘 찾아내서 내게 보여주며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자연은 늘 보아도 언제나 새롭게 보인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와도 항상 새로운 게 보인다.


나는 겨울나무 보는 게 좋아

뭐가 좋아 자고 있는데

다시 피어날 새싹을 품고 있으니까


춥고 거친 겨울을 견딘 나무는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묵묵히 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강인한 나무는 눈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긴 기다림 끝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광릉수목원

#시선 #봄 #새싹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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