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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다 있다

마트에 없는 것은

by 그리여

아버지는 기계나 전기 다루는 거나 고치거나 만들기는 잘하시는데 무엇을 키우는 일에는 재능이 없으셨다.

정확히 말하면 하기 싫어하셨다.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신다.

나이가 들면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굳어 버리신 것 같았다.


엄마를 보내고 몇 년 동안은 이것저것 하시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시지 않았다.

정정하시고 허리도 반듯하고 무릎도 수술했으니 많이 움직이며 꾸준히 관리하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잘 지내실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안 움직이려고 하시는지

이번에 산책하는데 너무 힘들어하셔서 마음이 안 좋았다.

걷기를 게을리한 티가 났다. 계속 옆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잘 움직인다고 하시면서 걱정 말라고 하신다.

"아부지 거짓말 하는 거 다 알아요. 걷는 거 보면 다 보여요" 하면 허허 웃으실 뿐이다.

잔소리하는 걸 싫어해서 애들한테도 안 하는 잔소리를 아버지한테만 하게 된다.


그런 아버지를 움직이게 하려고 생각한 게 텃밭을 가꾸게 하시는 거였다.

마당 한편에 조그맣게 하면 힘도 들지 않고 재미라도 붙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편과 나는 아버지 설득에 나섰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하기 싫다고 하시니까 강력하게 하시라고 하기도 그래서 단념을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또 권해 본다.

봄바람이 불고 날이 따사로워지고 만물이 소생하고 있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오는 봄을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 준다.

화단에 피어있는 꽃에 나비가 날아든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꽃이 예쁘다고 하면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꽃이름을 말해주신다.


"아버님 여기에 부추 심으시면 어떨까요"

아버님은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지 않으신다.

"아버님 상추랑 고추를 심어서 따 먹으면 좋을 거 같아요. 모종 2~3개 정도만 심으면 별로 힘들지 않아요.

알아서 잘 자라요. 그냥 잘라서 드시고 따서 드시면 돼요"

"마트에 가면 다 있다 뭐 하러 심어"

내가 부엌에 있을 때 내편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알려주었다.


어쩌면 저렇게 싫어하실까 웃음이 났다.

그렇지 마트에 가면 다 있긴 하지

하지만 애정을 담아서 키운 작물은 없지 않은가

키우는 재미를 알게 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이번에는 내가 또 조근조근 꼬셨다.

"아부지 내가 예전에 시아버님이랑 주말농사를 지을 때 방울토마토를 심었어. 일하다가 힘이 들면 그거 따 먹으며 일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아직도 생각이 나! 햇볕을 잘 받으면 훨씬 더 맛있어. 내가 먹어본 방울토마토 중에 제일이었어 그게 먹고 싶긴 해"

웬일인지 이번에는 단칼에 안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신다.

"근처에 모종 파는 데 있어요?"

"응 저 앞에 가면 있다"

"아 있구나 다음에 오면 심어져 있으려나"

아버지는 거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겠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확답을 듣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에 내려가서 우리가 심어놓고 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괜히 성가시게 할까 싶어 당신이 스스로 하시길 바랐다.

무엇을 해야 의욕이 생기실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해마다 날아오는 제비가 우리 집 처마밑에 둥지 틀은 것은 좋아하신다.

그걸 재미 삼아 관찰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 같다.

"제비야 니가 재롱이라도 부려 보렴"



#아버지 #텃밭

#마트 #야채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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