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그날
1990년대 대둔산(大屯山)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충청남도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 진안군에 걸쳐 있는 명산으로, 기암괴석과 웅장한 봉우리들이 특징이었다. 특히, 낙조대, 서금암, 마천대 등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날씨가 맑을 때는 멀리까지 펼쳐진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대둔산의 주요 명소였던 금강구름다리(금강현수교)와 삼선계단(가파른 철제 계단)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도 아찔한 높이와 경사가 있어 도전하는 등산객들이 많았으며, 특히 구름다리는 바람이 불 때 흔들려 더욱 짜릿한 경험을 선사했다.
구름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은 멈추고 걷기를 반복하며 떨면서도 기어이 계단을 오른다.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그야말로 강심장이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등 뒤의 황홀한 경관이 자꾸만 눈을 끈다.
탁 트인 대둔산의 아름다움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는 마력이 있다.
1990년대에도 대둔산의 대표적인 관광 시설 중 하나였던 케이블카는 많은 등산객들에게 사랑받았다. 1980년대 후반에 설치된 이 케이블카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현대적인 시설이었으며, 등산이 어려운 노약자나 일반 관광객들도 쉽게 대둔산 정상 부근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른 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스산하기 그지없는 숲 안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누가 가라는 것도 아닌데 기어이 이 겨울에 눈 속을 등반한다.
대둔산을 등반하다가 만난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줬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주기를 맞아 대둔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철없던 시절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는 동네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밤에는 술도 파시고 음식은 맛이 있어서 손님이 항상 끊이지를 않았다. 말이 없던 엄마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호기심을 주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와 실없는 농담을 하고, 엄마에게 어떡하든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오로지 음식만 파셨다. 그래도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런 엄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남편들을 홀려서 술을 판다고 오해하고 괴롭히기까지 했다. 아들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이 모든 고통을 홀로 고스란히 견뎌야만 했다.
어려서 그런 사정을 모르던 그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싫고, 엄마도 싫어서 가출을 할까 생각했지만 엄마를 홀로 두고 갈 수가 없어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그를 엄마는 한결같이 보듬어 주었다. 모진 시간은 그럼에도 어김없이 흐르고,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시던 엄마는 추운 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쓸쓸한 겨울의 어느 새벽에 꽃이 지듯 스르르 쓰러지셨다.
오랜 시간 장사를 하면서 아이를 홀로 키우셨으니 어찌 몸이 성하셨겠는가
그는 엄마를 간호하면서 철없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후회하고 엄마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글쎄다”
“잘 생각해 보세요”
“대둔산을 한번 가보고 싶구나 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같이 갔던 게 생각난다. 그때는 산세가 험하여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힘이 들어서 겨우 걷는 엄마를 아버지가 잡아주고 이끌어 주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와 같이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를 지키기 위하여 꼭 안고 있어서 엄마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몇몇 사람들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셨다.
그는 엄마에게 옷을 입히고 병원에 허락을 받고 산에 갈 차비를 하였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하여 나서는 길이 무겁기만 했다. 산행을 하는 건 무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발아래 산길이 이어졌다 끊겼다 한다.
다소 쌀쌀했지만 아직은 단풍이 지지 않아 아름다운 늦가을의 대둔산은 화려함으로 무장하고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늦은 가을 단풍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야로 산 전체가 울긋불긋하게 물든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날의 기억이 엄마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그는 바랐다.
엄마를 보내고 다시 오른 대둔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칼같이 날카로웠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와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던 그 길을 걸으며 그리운 이름을 불러본다.
“엄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둔산을 오르는데 왠지 그의 엄마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등반이 보이는 듯하다.
대둔산은 그들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봐 주었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돌아 아들이 엄마와 같이 산의 품에 들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등반의 추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산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의 엄마를 같이 추모하며 하산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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