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의 추억으로 남은 그때의 그 산
일주일 내내 업무에 시달리던 산이와 진영은 홀가분하게 길을 나섰다.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떠나는 게 좋아서 나선 길이다.
터미널에서 무작정 차를 타고 내린 곳은 원주였다. 동네는 규모가 작았지만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내리긴 했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눈앞에 보이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막상 가려고 보니 뭐 하나 변변히 챙겨 온 게 없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먹을 것은 가지고 올라가야지 하면서 동네에서 뭘 살까 하고 살펴보았다. 한적한 시골 분위기가 강한 곳이었다. 주택들은 낮은 기와집이나 슬레이트 지붕을 한 가정집이 많았고, 마을에는 작은 상점과 국밥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니 허름한 작은집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찐빵을 만드는 걸 보고 10개 사서 들고 올라갔다. 이런 작은 동네에서 찐빵을 만들어서 파는 건 처음 보는 정겨운 모습이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손은 무척 빨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골아낙네들의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였다.
그렇게 먹거리를 들고 산 쪽으로 난 길을 찾아서 걸었다. 산은 작았지만 여러 갈래의 오솔길이 제법 예뻤다. 가을 낙엽이 산을 이루고 내딛는 발길마다 푹푹 빠졌다. 낙엽의 바다를 건너는 기분이 들었다. 갈색잎들은 발아래서 풀풀 먼지를 던지며 바스락바스락 수군거린다.
"서울촌놈들이다"
산이와 진영은 깔깔거리며 그 먼지를 고스란히 마시고야 말았다. 발아래 길은 보이지도 않았고 길게 뻗은 낙엽길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한참 동안 마른 갈색낙엽에 홀려 걷노라니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포근하게 산을 쓰다듬었고 그 속에서 둘은 허기를 느꼈다. 생각해 보니 별로 먹은 게 없었다.
동네에서 사서 온 찐빵을 꺼내서 한입 베어 물었다. 따뜻한 팥소가 알알이 입속에서 녹았다. 깔끔하고 달지 않고 맛있는 게 처음 먹어보는 찐빵 맛이었다. 산이와 진영은 찐빵을 나누어서 담고 산을 오르며 조금씩 먹자고 한 약속은 잊어버리고 단숨에 다 우걱우걱 먹어버렸다. 한주의 스트레스를 이 작은 산에서 이렇게나 가볍게 낙엽과 같이 날릴 수 있다니. 자연은 언제나. 산은 또 늘 한결같이. 지친 작은 아이를 품어주었다.
"와아 이렇게나 맛있다니 좀 더 사 올걸"
아쉬움에 낙엽의 바다에 풀썩 쓰러져 누워버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포근함에 눈이 나른해졌다.
그 무렵에는 찐빵을 만드는 가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으로 반죽하고 발효시켜 만든 찐빵이 찹쌀을 넣어 쫄깃하고, 팥소가 달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었다. 가게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입소문을 타고 강원도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도에서도 일부러 찾는 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흥찐빵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유래한 전통 찐빵으로, 1990년대에도 이 지역은 찐빵으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1970년대부터 안흥에서 만들어진 찐빵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에는 안흥면 일대가 ‘찐빵 마을’로 자리 잡았고, 찐빵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먹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랬다 그 찐빵이 지금은 유명해서 모르는 이가 없는 안흥찐빵이었다. 소규모로 만들던 찐빵은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른 후 안흥에서 찐빵을 샀던 그 집은 기억을 더듬어 찾았지만 그때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동네를 헤매다가 가장 비슷한 집을 골라 들어가서 사서 먹어보니 맛있기는 하지만 그때의 그 찐빵이랑은 다른 맛이었다.
낙엽이 많이 쌓여있었고 발이 푹푹 빠지던 그 산길에서 허기를 달래려 먹던 찐빵은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맛이 잊히지 않았다. 산이는 그 이후로 다시 산을 찾았다. 하지만 그 산이 어딘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동네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찐빵 만드는 집이 많이 생겼고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산이었지만 낙엽이 많이 쌓여 푹 빠졌다가 다시 기어 나와서 산행을 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오르려 했지만 그때의 그 산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이 아예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저쪽으로 이어진 길이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거지 산이 발이 달려 어디 가지는 않았을 텐데"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한 건지 산이가 변한 건지 아담한 산세에 홀려서 어디 다른 세계로 갔다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기억은 흔적조차 없는 산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다가 찐빵만 사가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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