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사람들이 주로 특별한 날 오는 레스토랑이다. 이번 토요일 저녁은 꽤나 바빴다. 특히 중국 손님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몇몇 여자 손님들은 치파오를 입고 있기도 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조금 한가로워진 9시쯤, 커틀러리를 정리하다가 그제야 오늘이 설연휴라는 게 생각났다. 그래서 아빠가 시골집에 가서 토토 무덤 위에 핀 목화꽃 사진을 보내줬구나.
눈처럼 하얗고 눈과 귀가 까맣던 우리 토토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목화꽃으로 피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날에는 가족들이 시골집에 찾아올 테니까. 그런 생각과 만찬을 즐기고 있는 중국인 가족들의 모습이 겹쳐져 서늘한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설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느라 고속도로가 혼잡해지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이들의 웃음소리에 집이 왁자지껄해지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차가운 겨울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이어도 마음은 따뜻해질 수 있고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여름에도 마음은 서늘해질 수 있었다. 한식을 못 먹어서 힘든 적이 없었던 나였는데 다른 것보다 떡국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오랜만에 보일러가 켜진 시골집 방바닥에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 떡국. 퍼스에도 한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떡국은 설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 그런지 찾기 어려웠다.
파란 하늘을 분홍빛 노을이 덮었다 물러가고, 밤이 찾아오며 스완 강가에는 불빛이 하나하나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파란색일 때 앙트레(Entrée)를 먹기 시작한 가족들은 분홍빛 노을이 질 때 즈음 분홍빛 속살의 스테이크를 먹고, 무르익는 야경을 보며 천천히 와인을 마신다. 내 시선은 그들을 향해 있었지만 나는 아득히 먼 우리 집의 설날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부모님이 계신다는 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타국에 있는 딸에게 시골집 사진 한 장 보내주는 부모님과 설날에 돌아갈 집조차 세상에 없다면 나는 방향조차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을 테니. 한국에 돌아가서 우리 집 떡국을 먹을 때까지 나는 한 살을 먹지 못할 것 같다.
(*사진은 우리 집 떡국. 가장 기본적인 것만 들어가는데도 그렇게 맛있다. 나는 얼었다가 해동된 탱탱한 떡을 좋아해서 아빠 입맛대로 말랑말랑한 떡국을 끓이면 투정을 부리곤 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굴까지 넣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