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달라지기를
22.09.25
단 거를 먹으면 이상하게 졸음이 온다. 식단 마치고 처음으로 군것질을 하고 빵도 먹었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하도 단 거를 많이 먹고 살아서 이제 당뇨 전조 증상까지 생긴 모양이다. 그래도 오전에 비하면 꽤 평온했고, 선잠 속에서 꾼 꿈들이 나를 미지로 데려갔다.
꿈은 간혹가다 현실 내가 발버둥치는 일을 객관적으로 펼쳐보임으로써 색다른 체험을 하게 시킨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미지가 붉은 스라소니라는데, 나에게 그런 본능적 이미지는 아직 자리하지 않았다. 이런 꿈을 꾸면 나는 조금 정화되는 기분을 받는다. 오늘은 그냥 잘까 했는데, 그래도 좀 적어두고 자야지 하고 일어나 키보드 앞에 앉았다.
환각성 마약과 관련되어 끊임없이 고통받는 괴로운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요법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를 직접 체험할 기회가 별로(아예?) 없지만, 이에 도움을 받고 또 치료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감상들을 들어보면 참 그럴싸해 보였다. 이는 분명 자아에 대한 기존의 감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초월할 수 있는 강제적 경험을 제공해주는데, 말그대로 초연해지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늘 현실에 발 붙이고 싶다는 지향성이 있기 때문에(아마 그쪽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충분히 많겠지만), 그런 접근법에 회의감이 들곤 한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깨우침이든 마약이든 내가 변함으로써 세상이 달라지는 체험은 본질적으로 어린이의 놀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세계의 지탱은 물리적 현실에 절망했던 사람이 남은 여생 동안 이 현실을 바꾸고자 삶을 건 싸움을 하는 그 마음들의 집합이다. 예술이 이런 마음들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이런 마음들을 전시하는 데에만 관심을 둘 때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세상에의 태도가 곧 작품에 오롯이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이상, 나의 시가 왜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곱씹었다.
변함없는 사람을 만나는 건, 특히 내 또래 안에서는 매우 드물어서 이제는 누구도 변함없음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다.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상처에 따라, 고통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 사람이 달라지는 인상을 꽤 가혹하게라도 수긍해야만 하는 세대 같다. 그 가속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붙들던 줄을 놓게 된다. 이전이라는 줄, 과거라는 줄, '알았던'이라는 줄, 내 안에 자리한 세계 이해의 근거라는 줄. 한국 지성인 기성들의 한탄과 걱정 우려 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인상은 그들의 노파심이 어떤 삶에 근거했는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공감대의 지반이 모호하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찾으려 했던 거 같다.
며칠 전부터 뇌리에 스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그건 보호수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변함없는 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까? 내가 변했다는 현실을 반성하여 확인하고 싶었을까? 관계에 대한 도취적 구조가 특정 성분에 용해되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듯 달라붙었던 그 부위에 틈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시를 읽으려고 아침부터 카페에 왔는데, 도무지 마음이 받아주지 않았다. 감정들은 자기가 원하는 언어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파업했다. 결국 나는 졌고, 그래 원하는 게 뭔데 곰곰 들어보니 나무를 보러 가라고 해서 방학동에 가게 되었다.
방학동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물론 사람도 있고 건물도 있고 도로도 있고 서울에 있을 법한 인공들은 앵간하면 다 있다. 북한산 밑이라 그런지 주의를 기울이면 꽤 낯선 동네라는 인상을 풍기기는 하지만, 나에겐 이 인상이 무척 익숙했다, 도시 한복판에 비하면 분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라고 다 같은 동네가 아니듯, 각 동네마다 풍겨오는 이질적인 분위기는 고유의 지역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은행나무였으므로, 운이 좋게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130번을 타고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와 본 동네였다. 대충 지도를 확인하고 생각없이 연산군 묘 근처 공원에 들어가서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순간, 은행나무를 보려고 주변에 이리도 많은 나무가 있다는 걸 안 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역시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는구나 싶었다. 찬찬히 둘러보며 그 나무를 찾다가, 웃기게도 공원에 들어오는 길에 버젓이 서 있었다는 걸 마지막에서야 알게 됐다. 처음부터 있었는데, 전혀 인식을 하지 못했다. 시를 읽고 쓰는 내 모습 같았다. 이럴려고 마음이 오라고 했나.
너무 커서 나무가 아닌 줄 알았다. 아니, 너무 큰 게 바로 옆에 있어서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다큐를 보면서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밀림이나 야생의 나무가 얼마나 무지막지할 수 있는지를 이미지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는데, 텍스트로만 인공 환경 조경수 관리 등등을 알았지 감각으로 어떤 차이인지를 실감하지 못했으니 과연 이렇구나 싶었다. 키는 25m에 둘레 10.7m. 인간 나이로 884년이다. 사람들은 각종 자연물에 인간중심의 나이 잣대를 들이밀기 좋아하는데, 이를 꼬집는 대안 관점에도 별 관심이 없고 그냥 나무중심의 나이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알 길이 없는 나무의 속내. 방학동 은행나무는 정말 모든 걸 다 받아낼 것만 같았다.
은행나무 앞에서 길바닥에 앉아 일기를 적었다. 눈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걸 보았을 것이며, 귀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걸 들었을 것이며, 그런 감각들이 나무에게 없다는 사실은 어째서 내가 인간인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15년도에 한창 거리를 쏘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방학동 은행나무에 비하면 작고 귀여운, 우리가 흔히 거리에서 마주하는 인위적인 은행나무들 사이를 쏘다니던 시기였다. 그때 나무가 나의 무無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걸 시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삶에 있어서 '좋은 순간'은 침묵으로 있게 해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방학동 은행나무는 그 무의 질을 확장시켰다. 나는 침묵을 다시 배웠다.
울면서 적은 일기에 뭐라고 적었는지는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우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기분보다 세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고전적인 이분법으로는 감정과 이성이 분리되어 있는, 참으로 괴로운 내 정신이 이런 감수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만 이런 나의 상태를 충분히 설명할 어휘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에 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때는 이런 어휘 부족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눈에 불을 밝히고 대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이에 대해서 나를 표현해야 할 때마다 난처함을 느끼곤 한다.
일기를 적으면서 지킨다는 동사가 마구 쏟아지는 걸 느꼈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걸까, 도망치는 걸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나무는 그저 나무로 있는다는 걸 느낄 뿐이었다. 슬프다고, 외롭다고, 억울하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괴롭다고 아무리 쏘아대도 나무는 나무, 나는 나, 무는 무. 어릴 때부터 읽었던 나무 동화처럼 나무가 정말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나는 그 호의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괴롭구나, 나에게 다 주고 가. 난 언제든 여기에 있을 테니까' 하고. 그럴 수 없다, 결코 절대 그럴 수 없다. 이 괴로움이 어떤 건지 알면서 누군가에게 떠넘긴다니.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그저 잘 봐달라는 말뿐. 늘 살았던 것처럼,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낚싯바늘 같은 물음표들이 나를 걸고 찢어내지 않을 수 있다고. 찾아낼 수 있다고, 도망쳐도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마음을 침묵 속에서 떠오르게 하는 나의 무. 침묵이라는 동굴에 들어가기 두려웠던 지난 시절에 이제야 용기를 조금이라도 가져볼 수 있겠다고 나무에게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곧 있으면 방학동 은행나무가 변신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나를 봐줬으니 이번엔 내 차례다. 조만간 보러 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변함없는 마음이 도착했다. 겉으로는 아니었어도 속으로는 늘 도망치고 겁나 했던 나를 변함없게 만드는 마음. 도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아를 바꾸고 관점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고 감수성을 매만지는 접근들이 나에겐 너무 아득하다. 884년 동안 뿌리를 거두지 않을 때까지 거둬들여야 했을 무수한 뿌리들을 생각하면, 내 삶의 가속은 나의 책임이기도 하다. 변함없이 달라지는 사람이기를, 그런 사람이기를 더듬거리는 버스 안. 정말 오래도 도망쳤구나 싶었다. 한 번도 도망치지 않으면서도 단 한 번도 도망치지 않을 수 없던, 모순의 마음을 어떻게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야지, 말을 해야지. 침묵의 고통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끔찍하게 느끼는 나에게 있어 가장 금기시되는 그런 순간을,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사과와 책임을 구하는 말이 부재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과 무책임에 어떠한 말에의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너무 괴로웠는데, 그 괴로움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데리다를 읽으면서도 끔찍했던 그 현실을, 이제는 안아야겠다. 그런 다짐을 하고 곯아떨어졌더니 꿈을 꿨다.
https://www.youtube.com/watch?v=snLEafjTv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