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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Sep 29. 2022

화엄으로 가는 길 1


22.09.29



https://www.youtube.com/watch?v=wSFkP-_vbgI




몇 년 동안 기다렸던 음악제였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마음 속에 뒀던 걸 드디어 실현시킨다. 화엄음악제에 간다.


 오전에 본가에 왔다. 몇 주 전 화엄사에 간다고 했더니 엄마가 의외로 관심을 보였고, 그래서 같이 가게 됐다. 엄마는 마침 할머니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며 외할머니댁에서 자고 넌 화엄사로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한창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였다. 간단히 점심을 차려 먹고, 엄마는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를 처리하며 정신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서성거리면서 3시간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불가능한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골몰했다.


 이번에 아빠 보러 갈 거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작은 할아버지와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무슨 관계가 있는데 늘 그런 걸 까먹는다. 나의 아버지였다면 모두 적어두고 외웠다)에게 줄 것을 사야 한다며 이마트부터 들리게 됐다. 마실 거와 과일을 사고 운전대를 잡은 나는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중간에 심심해지자 엄마 18번 곡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대뜸 차에 시디가 있다고 틀었다. 그 시디는 이 차의 전 주인이 자기도 까먹고 엄마한테 차와 같이 넘겨 준 시디인데, 엄마도 5년 만에 발견했다고. 유명한 트로트와 조성모, 팝송이 섞인 취향이 있는 시디였다. 나는 '무조건 달려갈 거야~~~' 따라 부르며 140km를 밟았다. 150km에 가까워지면 엄마는 속도 좀 줄이라고 핀잔을 줬다. 내 삶의 태도 중 하나가 개같이 사는 건데, 고속도로를 밟을 때면 나도 모르게 아스팔트의 소실점에 몰아될 때가 있어서 계기판을 강박적으로 봐야 한다.


 저녁 때가 되자 엄마가 갑자기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마침 여천 근처였고, 엄마가 아는 식당이 있다며 나에게 '매운탕 좋아하니' 물었다. 나는 근처 식당을 어떻게 아는지 신기해 하며 바로 가자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휴일이었다. 오는 길에 무척 화려한 한옥 인테리어의 식당이 있었고, 거기서 밥을 먹고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외할머니는 연속극 보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웃으며 우리를 반기셨다. 근데 집에 들어오니 할머니와 막내 사촌 동생(엄마는 6남매 중 첫째인데, 그중 막내인 삼촌의 막내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현수막으로 거실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할머니에게 저게 도대체 뭐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남사시러 니가 좀 떼봐야' 하고 쑥쓰러워 하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막내 삼촌 딸이 할머니 생신 선물이라고 직접 만들어서 걸어 준 거라고.


 서로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다가 나는 할머니에게 '머스마 왔는데 일 좀 시켜 할머니'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일을 달라고 할 때마다 절대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자신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윤리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할 수 있을지 그 빈틈을 찾으려고 매달린다. 외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고, 거진 한 쪽 다리를 질질 끌어야 이동이 가능하시다. 그래서 시골에 올 때마다 나는 거름 옮기는 일이나 무거운 걸 드는 일, 뭔가를 옮기는 일을 계속 묻고 찾는다. 외할머니는 절대 안 시키려고 한다. 나는 무조건 하려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내가 이긴다. 


 나의 외할머니는 1인분으로 사는 데에 특화된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이 노인이라는 데에 일반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호의와 배려를 거부한다. 자신의 몸이 불편하다는 데에 다가오는 것들도 마찬가지. 자식들도 이 고집을 결코 거스르지 않는다. 이는 나의 외할머니가 스스로로 하여금 '노인'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기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외할머니는 늘 나에게 '시간도 없을 텐데 어찌 시간 내서 왔다냐'며 고맙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자식과 자식들의 자식들이 찾아오는 건 그들의 시간이 자신에게 쓰여지는 것이고, 그 우선순위가 최우선이 아니라 최하위에 가깝다는 의미다.


 외할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혼자 지내신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농사 일, 장사 일을 하신다. 순천에는 웃장과 아랫장이라고 주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 있는데, 외할머니는 늘 아랫장으로 가 직접 재배 수확한 것들을 내다 파신다. 저번에 왔을 때도 새벽 일찍 할머니를 아랫장에 모셔다 드렸는데, 갔더니 또래 할머니들이 다 나와계셨고 다들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번에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 몸도 불편한데 아랫장 왜 꼬박 가시냐'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안 가면 사람들이 찾어야, 가서 야그도 하고 글치, 밥그릇도 있어야'하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아랫장에 가져갈 거 같이 좀 따자고 했더니, 얼마 안 된다며 자꾸 나를 밀어냈다. 꼬칫닢(고추잎)이 요번 나의 목표다.


 내일 오전에는 아빠 산소에 들렸다가, 오후에 음악제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엄마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모자를 자신의 엄마한테 '엄마 모자 어때?'하고 자랑하는 중이다. 원래 할머니 것도 만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고, 출발 전 엘리베이터에서 나한테 얘기했었다. 


 순천 시골집에 왔더니 편안하다. 편안한데, 두렵다. 이 두려움은 하늘에 박힌 촘촘한 별빛과 어둑한 산 기운, 그리고 할머니네 마당에서 풍겨오는 모과향이 자아내는 생명력이다. 사방에서 울리는 찌르래기 울음. 마당에서 담배를 피는데 각종 인기척들이 엄습했다. 미분인지에 특화된 나는 늘 이런 '기척'에 육감이 발달되어 있는데, 역시 저 멀리서 고양이 한 마리가 슥 지나갔다. 어렸을 때는 이런 어둠이 무서웠다. 15년도부터는 이 어둠이 친숙해졌다. 아궁이에 담배 꽁초를 던지고 들어왔다.


 자는 방 천장에 여왕개미(?) 벌(?) 한 마리와 같은 크기의 이름모를 곤충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불 끄면 같이 자야지. 도시와는 동 떨어진 시골집에서만 느껴지는 각종 모습과 상황들. 도시 토박이들은 이런 것들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혐오하더라. 집 구석에 쳐진 거미줄이나, 수건의 눅눅함이나, 시골집 특유의 냄새-향기들. 나는 도시 토박이지만 이런 시골이 있기에 편협한 감정이 양생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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